그랜드바겐 뜻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협상 구상을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으로 공식 규정하면서다. 그랜드바겐이란 부분적인 타협이나 임시방편식 합의가 아니라, 쟁점 전반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중대한 합의를 뜻한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중동 질서 전체를 뒤흔들려는 구상으로 읽고 있다.
밴스 부통령은 이날 조지아주에서 열린 보수단체 '터닝포인트 USA' 행사 연설에서 "대통령은 작은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 그랜드바겐을 원한다"고 못 박았다. 단순한 긴장 완화나 일부 제재 해제 수준의 스몰딜이 아니라, 이란 핵 문제와 경제 정상화를 한 번에 묶어 처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핵 포기하면 번영 보장, 안 하면 봉쇄 강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내민 제안은 이렇다. 핵무기를 내려놓고 정상 국가처럼 행동하면, 미국도 이란을 경제적으로 정상 국가처럼 대우하겠다는 것이다.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제안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며 "이란이 정상 국가로 행동할 의지가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대우할 의지가 있다"고 했다.
합의가 아직 나오지 않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합의의 수준 자체가 높아서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않고, 테러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지 않으며, 이란 국민이 세계 경제에 실질적으로 편입되는 구조적 합의가 아니면 도장을 찍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기적 동결이나 일시적 양보로는 협상선에 닿지 못한다.
반대로 이란이 그 조건을 수락하면 어떻게 되는가. 밴스 부통령은 이 부분에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이란을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만들고 세계 경제로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제재의 틀 안에 갇혀 있던 이란 경제를 국제 무대에 복귀시키겠다는 약속으로, 단순한 제재 완화를 넘어 이란 경제 체제 자체를 정상화하는 구상까지 담겨 있다.
미국이 고수하는 조건은 크게 두 갈래다. 농축 우라늄 제거와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는 엄격한 검증 체계다. 지금 당장 핵을 내려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도 재개발의 여지를 원천 봉쇄하는 구조적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21시간, 그리고 빈손 귀환
이번 발언은 지난 주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1차 대면 협상 직후에 나왔다. 밴스 부통령은 파키스탄 중재로 열린 이 협상에서 미국 대표단을 직접 이끌었다. 협상 테이블에는 밴스 부통령 외에도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 재러드 쿠슈너 트럼프 대통령 사위가 함께했다.
21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밴스 부통령은 합의 없이 파키스탄을 떠났다. 이란이 미국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밴스 부통령은 회견에서 "우리는 상당히 협조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협상 자체를 실패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이란 측도 합의를 원하는 기류가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양국 사이에 "많은 불신이 존재한다"며 하룻밤 사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인정했다. 오는 21일 만료되는 2주 휴전이 연장될 수 있다는 신호로 외교가는 받아들이고 있다.
해협 봉쇄로 압박하고, 번영으로 유인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유인을 동시에 구사한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과 연계된 선박들을 차단하는 조치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핵 포기를 전제로 한 경제 정상화라는 출구를 열어두는 방식이다.
밴스 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으면 협상 국면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봉쇄선에 접근하는 이란 선박은 즉시 제거될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여기에 미 재무부는 이란산 원유에 대한 한시적 제재 면제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혀 경제 압박 수위를 추가로 높였다.
이란의 셈법, 핵은 협상 카드이자 체제의 방패
이란이 쉽게 물러서지 않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핵 프로그램은 이란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협상 카드인 동시에 정권 정당성의 일부로 기능해왔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20년간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란은 최대 5년까지만 수용할 수 있다며 맞섰다. 기간을 둘러싼 이 간극은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니라 양국이 얼마나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과도한 요구를 자제하고 이란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을 순수한 실리 교환이 아니라 체제 수호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란 대통령은 국제법적 틀 안에서 진행된다면 추가 논의에 열려 있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공은 이란으로 넘어갔다
밴스 부통령은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제안했다"며 향후 합의 여부는 전적으로 이란 측에 달렸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틀 안에 2차 협상이 파키스탄에서 재개될 가능성을 시사하며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협상이 재개된다면 밴스 부통령이 다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을 것으로 전해진다. 로이터 통신은 양국이 비공개 회담을 통해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 진전이 있었으며, 새로운 회담에서 제시될 수 있는 합의안에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미국과 이란의 불신이 하나의 협상 테이블로 좁혀진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민 그랜드바겐 카드가 중동의 판을 실제로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한 번의 결렬로 끝날지는 이란의 다음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