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떠난 지 1년도 안 됐는데... 토트넘, 사실상 초상집 분위기

2026-04-14 17:16

남은 경기서 최소 2승 못하면 강등
엄청난 망신인 동시에 재정적 재앙

13일(현지시각) 잉글랜드 북동부 선덜랜드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벌어진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경기가 끝난 뒤 토트넘 홋스퍼 주장 크리스티안 로메로는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걸어 나왔다. 강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새 감독 로베르토 데 제르비를 선임하고 임한 첫 번째 공식 경기, 상대는 이번 시즌 1부 리그에 복귀한 선덜랜드였다. 토트넘은 노르디 뮈키엘레의 굴절 슈팅 한 방에 0-1로 무릎을 꿇고 강등권 탈출에 실패했다. 로메로의 눈물은 단지 한 선수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랐던 명문 구단이 2부 리그 강등이라는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선덜랜드와의 경기가 끝난 뒤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이 도미닉 솔란케를 끌어안고 있다. 취임 첫 경기에서 0-1 패배를 당한 데 제르비는 경기 후 '선수들은 지금 이 순간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구단 홈페이지
선덜랜드와의 경기가 끝난 뒤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이 도미닉 솔란케를 끌어안고 있다. 취임 첫 경기에서 0-1 패배를 당한 데 제르비는 경기 후 "선수들은 지금 이 순간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구단 홈페이지

32경기를 마친 현재 토트넘은 30포인트로 18위에 자리하고 있다. 17위 웨스트햄(32점)과는 불과 2점 차이지만, 남은 경기는 6경기에 불과하다. ESPN이 전한 대로 이는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이 시점까지 강등권에 머문 최초의 사례다. 토트넘은 올해 단 한 번도 리그에서 이기지 못했다. 이 14연속 무승은 클럽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기록이다. 스카이 스포츠에 따르면 잉글랜드 1부 리그 역사에서 새해 이후 14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고도 강등을 피한 팀은 단 한 팀도 없었다.

시즌을 돌아보면 재앙의 씨앗은 일찌감치 뿌려졌다.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를 제패하며 17년 만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앤지 포스테코글루가 여름에 쫓겨났다. 그 자리를 채운 토마스 프랭크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세 번째로 선택된 이고르 투도르는 불과 44일 만에 경질됐다. 포레스트에 0-3으로 참패한 뒤 경기 후 공식 미디어 석상에 나타나지도 않은 채였다. 그리고 클럽은 네 번째 감독으로 브라이턴을 유럽 무대에 올려놨던 로베르토 데 제르비를 선택했다.

데 제르비의 첫 경기조차 패배로 끝났다. NBC 스포츠는 선덜랜드전 후 신랄한 비판을 내놨다. "데 제르비는 전술적으로 뛰어난 감독임에 분명하지만 그가 토트넘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술보다 정신력에 더 가깝다.". 선덜랜드전에서 토트넘의 전반 기대골(xG)은 0.09에 그쳤고, 후반에도 마찬가지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필드 위에서 팀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지 못했다. 동점을 만들어야 할 상황에서도 전방을 향한 추진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NBC는 "긴박감도 투지도 정신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이 시즌 내내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부상의 악령도 토트넘을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있다. ESPN에 따르면, 이번 시즌 내내 클럽에 있었던 선수 중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은 선수는 골키퍼 굴리엘모 비카리오와 마티스 텔 단 두 명뿐이다. 그나마 비카리오는 최근 국제 휴식기 중 서혜부 수술을 받아 리그 복귀 시점이 불투명하다. 미드필더 데얀 쿨루셉스키와 제임스 매디슨은 각각 무릎 부상으로 이번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더욱이 선덜랜드전에서는 주장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잠재적 뇌진탕 증상으로 교체 아웃됐다. ESPN 아르헨티나 소식통에 의하면 로메로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팀을 이끌어야 할 핵심 자원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가운데,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정신적 피로가 더해지고 있다.

로베르토 데 제르비 토트넘 홋스퍼 감독. / 구단 홈페이지
로베르토 데 제르비 토트넘 홋스퍼 감독. / 구단 홈페이지



데 제르비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선수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토트넘이 하위권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행복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등 공포가 문제의 핵심이냐는 질문에는 짧고 명확하게 답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는 46살이고 선수들보다 경험이 많다. 한 경기만 이기면 모든 게 달라 보일 것이다. 지금 당장의 목표는 딱 한 가지, 한 경기를 이기는 것이다." 다만 그는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우리는 토트넘이기 때문에 이기는 게 아니다. 종이 위의 이름값으로는 경기를 이길 수 없다."

이 모든 혼란의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ESPN의 마크 오그덴 기자는 이번 시즌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기사에서 이렇게 물었다. "내리막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패배 이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를 전격 경질했던 결정인가, 아니면 그 이후로 이어진 주제 무리뉴, 누누 에스피리토 산토, 안토니오 콘테를 거쳐 포스테코글루, 프랭크, 투도르, 그리고 데 제르비로 이어지는 끝없는 감독 교체인가. 아니면 이번 시즌 초 새 구단주 측이 20년 넘게 클럽을 이끌어온 대니얼 레비 회장을 이사회에서 밀어낸 내홍인가. 명확한 단 하나의 원인은 없다.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토트넘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1년 전 토트넘은 유럽 정상에 섰다. 지난해 5월 토트넘은 스페인 빌바오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유로파리그를 제패했다. 구단 역사상 17년 만의 트로피였다. 그 영광의 주역 중 한 명이 주장이었던 손흥민이었다. 10년간 스퍼스의 등번호 7번을 달았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2021-22시즌, 23골)에 올랐으며, 통산 173골을 기록한 전설적인 공격수. 그러나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직후 그는 클럽과의 작별을 선언했다.

지난해 8월 손흥민은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의 LAF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약 2650만 달러다. MLS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는 이적이었다. 손흥민은 LAFC와 2027년까지 계약을 맺었으며 최대 2029년까지 연장 옵션도 포함됐다. 손흥민은 LAFC 입단 기자회견에서 "꿈이 이루어졌다. 로스앤젤레스는 참으로 위대한 도시다. 나는 여기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그를 탐내왔던 LAFC 구단주 베넷 로젠탈은 "소니를 LAFC에, 그리고 우리 도시에 데려오는 것이 수년간의 꿈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덜랜드전에서 코너 갤러거가 동료에게 손짓으로 지시하고 있다. 토트넘은 이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1로 패했다. / 구단 홈페이지
선덜랜드전에서 코너 갤러거가 동료에게 손짓으로 지시하고 있다. 토트넘은 이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1로 패했다. / 구단 홈페이지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난 자리는 사랑받던 영웅의 공백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클럽의 황금기와 몰락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이별이기도 했다. 손흥민이 떠난 뒤 토트넘은 공격의 중심축을 잃었다. 도미닉 솔란케, 히샬리송, 랑달 콜로 무아니 조합은 지금껏 득점력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ESPN은 선덜랜드전에서 셋이 나란히 선발 출전한 것이 이번 시즌 처음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10년간 지속된 손흥민-해리 케인 파트너십이 구축했던 공격 시스템은 이제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남은 6경기의 일정을 보면,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만은 아니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가 전한 잔여 일정에 따르면, 오는 25일에는 울버햄튼 원정, 다음달 9일에는 강등권 라이벌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가 예정돼 있다. 두 경기 모두 하위권 클럽과의 직접 대결이다. 강등권을 벗어나기 위해 토트넘에 필요한 점수는 36~38점으로 추산된다. 즉 남은 6경기에서 최소 2승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Opta 슈퍼컴퓨터는 토트넘의 강등 가능성을 23.33%로 산출했는데, 이는 같은 시점에서 웨스트햄의 강등 확률(58.75%)에 비해 낮은 수치다.

다만 통계가 희망을 말하는 것과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NBC는 경고한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17위 웨스트햄이 흔들릴 것이라는 보장도, 노팅엄 포레스트의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데 제르비가 짧은 시간 안에 선수단의 정신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가 부임 후 밝힌 말이 현재 토트넘의 상황을 정확히 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순간 안에 있다. 내 임무는 지금 당장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멘털리티다. 긍정적이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역사나 통계는 토트넘 편이 아니다. 새해 첫날부터 이처럼 오랜 무승을 기록한 팀들, 즉 2007-2008 더비 카운티(18경기), 2002-2003 선덜랜드(17경기), 2016-2017 미들즈브러(14경기) 모두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토트넘의 현재 기록은 14경기 무승이다.

리그 창립 이래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떠난 적이 없는 토트넘에 강등은 단지 성적의 문제가 아니다. 재정적으로도 치명적이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 수익 배분액의 급감은 물론이고 유럽 대회 참가 자격 박탈, 주요 선수 이탈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는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상흔을 남길 수 있다. 엄청난 망신인 동시에 막대한 재정적 재앙인 셈이다.

오는 18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브라이턴과의 홈 경기는 사실상 데 제르비 체제의 진짜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브라이턴은 공교롭게도 그가 창조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로 명성을 쌓았던 전 소속 클럽이다. 이 경기에서도 이기지 못할 경우 토트넘 분위기는 ‘강등 확정 초읽기’로 바뀔 수 있다. 손흥민이 LA에서 새 챕터를 쓰는 동안 그가 10년을 헌신한 구단은 이렇게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강등 시나리오의 한복판에 서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