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년 전 화산이 만든 '동굴 속 법당'…약수·바다가 있는 신비한 '국내 사찰'

2026-04-14 17:06

제주 산방산 중턱, 이국적인 천연 동굴 법당 '산방굴사'

제주 서남부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를 내려다보며 우뚝 선 산방산과 마주하게 된다. 제주 오름과 달리 정상부에 분화구가 없고, 매끄러운 암벽이 병풍처럼 둘린 이 돌산의 허리쯤에는 특별한 공간이 숨어 있다. 절벽 한가운데 바다를 향해 입을 연 동굴 사찰, 산방굴사다.

산방굴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산방굴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해발 395m의 산방산은 약 70만~80만 년 전 점성이 강한 용암이 멀리 흐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으면서 형성된 전형적인 종상화산이다. 성산일출봉 등과 함께 영주 10경의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예부터 신성한 기운이 깃든 곳으로 여겨졌다. 산 중턱에 방과 같은 굴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처럼, 해발 150m 지점에 이르면 거대한 해식동굴인 산방굴을 만날 수 있다. 이 굴은 오랜 시간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뒤 지반이 융기하면서 지금의 높이에 놓이게 됐다. 자연이 만든 이 천연 동굴은 고려시대 고승 혜일법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전해지며, 오늘날까지 불상을 모신 사찰로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가 됐다.

산방굴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산방굴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산방굴사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다. 정적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 이 물소리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산방산의 여신 산방덕이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고성목이라는 청년과 혼인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를 탐낸 관리가 남편에게 누명을 씌워 유배를 보내자, 산방덕이는 인간 세상의 비정함에 절망해 다시 산방굴로 돌아와 바위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덕이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이라고도 한다. 바위틈에서 모인 이 물은 사계절 내내 마르지 않는 약수로 알려져 있으며, 법당을 찾는 이들에게 산방굴사 특유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산방굴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산방굴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산방굴사 안쪽에서 밖을 바라보면 제주 남쪽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굴의 입구가 커다란 액자처럼 바다 풍경을 감싸안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형제섬과 가파도는 물론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서예가 추사 김정희 역시 유배 생활 중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이 이 풍경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동굴 안의 서늘한 공기와 바깥의 밝은 바다 풍경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산방굴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취다.

산방굴사에서 내려와 해안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용이 바다로 뛰어드는 듯한 형상의 용머리해안이 이어진다. 오랜 시간 쌓인 사암층이 파도에 깎여 독특한 절벽을 이룬 이곳은 산방산과 함께 제주 서남권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꼽힌다. 용머리해안의 거친 해안선과 산방산의 묵직한 산세는 서로 다른 인상을 주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이 일대 특유의 풍경을 완성한다. 특히 이 일대는 지질학적 가치가 높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며, 제주의 자연을 가까이에서 체감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산과 해안, 절벽과 동굴이 한 공간 안에서 맞물려 있는 점은 산방산 일대가 지닌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산방굴사에서 바라본 풍경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산방굴사에서 바라본 풍경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제주 서남권 여행의 즐거움은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방산 인근 사계리와 모슬포 일대는 제주의 바다 먹거리를 맛보기 좋은 곳이다. 대표적인 향토 음식으로는 갈치조림과 옥돔 요리가 꼽힌다. 제주 앞바다에서 잡은 갈치는 살이 단단하고 고소해 무와 함께 매콤하게 졸이면 깊은 맛을 낸다. 봄철 제주 식탁에는 유채나물과 고사리도 빠지지 않는다. 4월이면 산방산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는 나물로도 즐기고, 중산간 지역에서 채취한 햇고사리는 비빔밥이나 향토 음식 재료로 널리 쓰인다. 후식으로 천혜향이나 레드향 같은 제철 만감류를 곁들이면 제주의 계절감도 더욱 또렷해진다. 산방산과 산방굴사를 둘러본 뒤 주변 마을에서 제철 음식까지 함께 맛보면 여행의 만족도도 한층 높아진다.

산방산의 사찰들 / 연합뉴스
산방산의 사찰들 / 연합뉴스

산방굴사의 이용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표는 오후 5시 20분에 마감된다. 관람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 500원이다. 제주도민과 6세 이하 영유아, 65세 이상 어르신은 신분증을 지참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다만 계단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만큼 편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고, 날씨에 따라 주변 해안 관광지의 관람 여건이 달라질 수 있어 동선도 함께 살펴보는 편이 좋다.

산방굴사 / 구글 지도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