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찾아 삼만리… "갈 곳이 없다" 세입자들 공포

2026-04-14 11:04

매물 잠기고 가격 치솟고… 전세난, 전국으로 확산
수천 가구 대단지에 전세 3채… 씨 마른 전세 매물
서울 매물 1년 새 반토막… 61주 연속 오른 전셋값

서울 한강 이북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 뉴스1
서울 한강 이북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 뉴스1

이사 날짜는 다가오는데 갈 곳이 없다. 전세 매물을 찾아 앱을 열어봐도 빈칸뿐이고, 부동산에 전화해도 "없다"라는 말만 돌아온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올해 7월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데 동탄에 전세 매물이 없다고 했다. 경기 화성시 동탄에 거주하는 그는 "동탄 2신도시만 하더라도 젊은 세대가 처음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곳인데, 그 아파트밖에 없는 도시에 전세 매물이 없다"고 14일자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밝혔다. 야당 대표가 세입자로서 전세 가뭄을 직접 체감한다고 호소하는 시대가 됐다. 전세 시장의 위기는 특정 계층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전세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포를 느끼고 있다.

숫자부터 보자.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5000건대로 쪼그라들었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렸던 3만 건이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다. 1년 전만 해도 2만9000건이 넘던 매물이 절반 가까이 사라진 것이다. 25개 자치구 중 22개 구에서 전세 매물이 감소했다. 성북구는 1년 사이 89%가 넘게 줄었다. 2000가구 대단지에 전세 매물이 3채에 불과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관악구 관악드림타운 3544가구에 전세 매물은 6가구가 전부다. 수천 가구가 사는 대단지에서 전세를 구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3월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부동산에 게시된 매물 안내문. / 뉴스1
3월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부동산에 게시된 매물 안내문. / 뉴스1

매물이 없는 만큼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기준 서울 전세가격 상승률은 0.16%. 전주(0.15%)보다 오름폭이 더 커졌다. 61주 연속 상승이다. 1년 넘게 한 주도 빠짐없이 오른 것이다. 강북구는 한 주에만 0.29%, 노원구는 0.26% 뛰었다. 단지에 따라서는 두 달 만에 전셋값이 억 단위로 오른 사례도 나왔다. 동대문구 답십리의 경우 지난해 5억 대에서 6억원대였던 전세 보증금이 최근 7억2000만원까지 올랐다. 1분기 서울 아파트 전세 신규 계약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6.25%나 오른 6억4028만원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올해 서울 전세가격이 연간 4.7%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매가 상승률 전망치(4.2%)를 웃도는 수치다.

가장 직격탄이 된 건 지난해 10월 발표된 10·15 대책이다. 정부는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실거주 의무를 부과했다. 아파트를 취득하면 4개월 안에 잔금을 치르고 직접 입주해야 한다. 집을 사서 전세를 놓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수요자들이 아파트를 매수한 뒤 기존 세입자를 그대로 두거나 새 세입자를 들이는 방식으로 전세 공급이 유지됐다. 그 통로가 한 번에 닫혔다.

갭투자도 사라졌다. 전세 보증금을 레버리지 삼아 집을 사는 방식은 수도권 전세 공급의 상당 부분을 떠받쳐왔다. 갭투자자들이 집을 사면 세입자가 생기고, 그 세입자가 나가면 다시 새 전세 매물이 나왔다. 이 순환이 끊기자 시장 전체의 전세 물량이 한꺼번에 줄었다.

다주택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압박 수단으로 써왔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하고 세를 놓던 임대인들은 집을 팔거나 직접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 팔면 전세 매물이 줄고, 직접 입주하면 기존 세입자가 쫓겨나 전세를 새로 구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시장의 전세 총량은 줄어드는 구조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역설적으로 전세 가뭄을 심화했다. 기존 세입자가 갱신권을 행사하면 집주인은 이를 거절할 수 없다. 덕분에 자리를 지킨 세입자 입장에선 주거가 안정됐지만,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장에 나올 매물 자체가 없어졌다. 물이 돌지 않고 고여 있는 것이다. 기존 세입자에게는 댐이 됐지만 새 세입자에게는 사막이 됐다.

3월 30일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에 붙은 부동산 매매 안내문. / 뉴스1
3월 30일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에 붙은 부동산 매매 안내문. / 뉴스1

결국 지금 전세 시장에선 공급할 주체도 공급할 유인도 모두 사라진 상태다. 집주인은 전세를 내놓을 이유가 없고, 투자자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 없고, 다주택자는 보유 자체가 부담이다. 전세 공급의 모든 수원지가 동시에 막힌 셈이다.

공급 절벽도 겹쳤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6412가구다. 지난해(3만1856가구)보다 48% 급감한 수치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연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착공이 줄어든 여파가 입주 감소로 이어졌다. 공급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수요는 그대로다. KB부동산 전세수급지수는 157.7까지 올라 2021년 이후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100이 넘으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전국 주요 지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전남은 3개월 새 전세 매물이 46% 감소했고, 대전(-31.4%), 광주(-20.9%), 부산(-16.3%) 등 대부분 지역이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전세 가뭄이 서울에서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지적한 동탄의 상황은 이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동탄은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대규모 신도시로, 젊은 신혼부부가 처음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곳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아파트 대단지가 밀집해 있고 거주 인구의 절대다수가 세입자다. 그런 곳에 전세 매물이 없다는 사실은 수도권 전체로 전세난이 퍼졌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대출을 죄서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전세를 또 없애버리니 이제 월세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세를 못 구한 사람은 월세로 내몰린다. 월세는 주거비 부담이 전세의 두세 배다. 서울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평균 6억원을 넘어선 지금, 이를 월세로 전환하면 매달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이 넘는 순수 주거 비용이 발생한다. 전세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구조라 사실상 이자 비용만 부담하면 됐지만, 월세는 원금 회수가 없는 순손실이다.

3월 23일 서울 노원구 한 부동산에 전월세 임대 매물 대신 매매 매물 정보만 가득하다. / 뉴스1
3월 23일 서울 노원구 한 부동산에 전월세 임대 매물 대신 매매 매물 정보만 가득하다. / 뉴스1

KB부동산 분석에 따르면 서울 중형 아파트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소득 3분위 가구는 월평균 소득의 24~33%를 주거비로 지출해야 한다. 저소득 청년과 신혼부부라면 월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방값으로 쓰는 상황이 된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로드맵을 요구했다. 전세가 위험 부담이 높다는 건 알지만 그러면 전세를 어떻게 순차적으로 바꿀 것인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출은 죄고, 전세는 없애고, 퇴로를 완전히 막으면 결국 서민 주거 부담만 폭발적으로 커진다는 논리다. 이 대표는 매매와 전세를 둘 다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면 지나치게 퇴로가 막힌다면서 전세를 줄이려면 집을 구매하는 대출에는 상당한 여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전세 가뭄의 수확은 내년 또는 내후년, 계약이 만료되는 수백만 세입자가 집을 옮겨야 하는 시점에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문제는 그때 가서 정책을 바꿔도 공급은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설계하고 착공하고 입주까지 최소 3~5년이 걸린다. 지금 공급 정책이 바뀌어도 실제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면 수년이 더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책의 실수가 고스란히 세입자의 몸으로 전해진다. 주거비 부담이 폭발하고, 전세에서 월세로 내몰리고, 서울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취약계층이다.

일부 전문가는 전세 제도 자체의 폐지 또는 축소를 추진하려면 순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세를 없애려면 먼저 세입자가 집을 살 수 있는 대출 환경을 열어줘야 하고, 장기 공공임대 공급을 대폭 늘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로를 만들기 전에 기존 통로를 먼저 막은 것이 지금 사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규제로 전세를 죄면서 동시에 매매도 대출로 막아버리면 서민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형태는 월세뿐인데, 그 월세 비용을 감당할 소득이 없는 계층에게는 결국 주거 불안이 아니라 주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