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을 뒤덮은 수백 톤의 톱밥 더미가 세월을 머금자 생명의 고동이 요동치는 기묘한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인공적으로 쌓인 거대한 톱밥 산이 자연의 시간과 만나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경이롭고도 치열한 생태계의 민낯이 공개됐다.

발효 열기가 빚어낸 따뜻한 인공 서식지
경상남도 소재의 한 산속에는 주변 숲을 간벌하고 남은 톱밥들이 곳곳에 산맥처럼 거대한 지형을 이뤄 쌓여 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흙 언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밟으면 발이 깊숙이 빠질 정도로 거대한 톱밥 뭉치다. 이 톱밥 산 내부를 확인한 결과, 톱밥이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열기로 인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넣으면 따끈따끈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곤충들이 추위를 피해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현장 조사 결과, 이 톱밥 산은 장수풍뎅이 유충들의 거대한 집단 서식지가 돼 있었다. 톱밥을 파헤치자마자 3령 말기의 장수풍뎅이 유충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몸이 노르스름하게 변한 유충들은 조만간 번데기 방을 지을 준비를 앞둔 상태였다. 채집 과정에서는 사람을 공격해 가렵게 만드는 흑파리 떼가 기승을 부려 작업에 난항을 겪기도 했으며, 톱밥 속에서 동면 중이던 등검은말벌이 발견돼 주의를 요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사슴벌레와의 먹이 경쟁과 생물 다양성

장수풍뎅이 유충 외에도 다양한 생물들이 이 환경을 공유하고 있었다. 주황빛 머리와 하트 모양의 엉덩이를 가진 사슴벌레 유충이 발견됐으나, 썩은 나무를 선호하는 사슴벌레들은 먹이 경쟁에서 장수풍뎅이에게 밀려 개체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한 등으로 기어 다니는 독특한 습성을 가진 만주점박이꽃무지 유충과 과거 산란 후 죽은 장수풍뎅이 성충의 흔적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과수 농가 피해 우려와 거대한 생태 기지

불과 몇 분 만에 특정 구역에서 수십 마리의 유충이 발견됐으며, 최종적으로 149마리의 장수풍뎅이 유충이 채집됐다. 영상에 따르면 장수풍뎅이는 특정 지역에서 복숭아 등 과수 농가에 피해를 주는 해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힘이 센 성충들이 무른 과일을 파헤쳐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수년간 방치된 수백 톤의 톱밥 산은 수만 마리로 추산되는 장수풍뎅이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는 거대한 생태 기지가 돼 있었다.
자원의 순환을 돕는 매개체, 톱밥의 정의와 가치
톱밥은 나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제재(製材)나 목공 작업 시 톱이나 절삭 공구가 목재를 파고들며 생겨나는 미세한 나무 조각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단순한 폐기물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자원 순환의 핵심적인 소재로 재평가받고 있다.
톱밥의 가장 큰 특징은 목재 고유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표면적이 매우 넓다는 점이다. 이는 수분 흡수력이 뛰어나고 미생물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배경이 된다. 특히 탄소 성분이 풍부해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톱밥은 축산 농가의 가축 침구로 활용돼 가축의 배설물을 흡수하고 악취를 저감하는 데 쓰인다. 농업 분야에서도 톱밥의 활용도는 매우 높다. 특히 버섯 재배의 핵심적인 배지(培地) 재료로 사용된다. 참나무나 미송 등의 톱밥에 영양분을 섞어 살균 처리하면 느타리, 표고, 영지 등 다양한 버섯이 자랄 수 있는 훌륭한 터전이 된다. 수확이 끝난 후 남은 톱밥은 다시 훌륭한 유기질 비료인 퇴비로 재탄생해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또한, 톱밥은 에너지 자원으로도 주목받는다. 잘게 부서진 톱밥을 고압으로 압축해 만든 목재 펠릿은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압축 과정을 통해 부피는 줄이고 열효율은 높여 보관과 운송이 용이해진 결과다. 톱밥의 종류는 원목의 수종에 따라 그 용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침엽수 톱밥은 향과 성분이 강해 탈취와 항균 효과가 뛰어나며 활엽수 톱밥은 당분 함량이 높아 버섯 재배나 곤충 사육에 주로 쓰인다. 다만 가공되지 않은 순수 원목에서 나온 톱밥은 친환경적이지만, 방부제나 접착제가 포함된 가공 목재에서 발생한 톱밥은 토양 오염을 유발할 수 있어 철저한 구분이 필요하다.
생태계 측면에서 톱밥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와 같은 갑충류 유충의 주요 식량원이자 안식처다. 톱밥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열과 영양분은 곤충의 성장을 촉진한다. 산속에 방치된 톱밥이 수만 마리의 생명을 키워낸 비결 역시 톱밥이 지닌 이 같은 생물학적 분해 가능성과 풍부한 탄소원에 기반한다. 결국 톱밥은 나무의 죽음 이후에도 다른 생명의 시작을 돕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처럼 톱밥은 버려지는 먼지가 아닌 자연과 산업의 경계에서 생명을 잇고 에너지를 만드는 소중한 자원이다. 단순히 나무의 잔재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지닌 다각적인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