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조차 범접 불가... 1년 만에 주가 30배 뛴 '한국인들에게도 친근한 회사'

2026-04-14 09:44

월가는 왜 샌디스크를 주목하나

1년 전만 해도 월가에서 샌디스크를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USB 메모리나 SD카드를 만드는 회사 정도로나 여기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샌디스크가 지금 미국 반도체주 주가 상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1년간 상승률이 무려 2879%다. 30배 가까이 올랐다는 뜻이다. 엔비디아조차 범접하지 못하는 수치다. 나스닥은 지난 10일(현지시각) 오는 20일부터 나스닥100에 샌디스크를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13일 샌디스크 주가는 하루에만 11.83% 뛰어 952.50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시간외거래에서도 970달러에 육박했다. 1년 전 이 회사의 주가는 27달러대였다.

샌디스크 본사 / 샌디스크 홈페이지
샌디스크 본사 / 샌디스크 홈페이지

샌디스크란 이름은 한국에서 디지털카메라 SD카드나 USB 메모리 브랜드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지금 월가를 흥분시키고 있는 샌디스크는 그 옛날 소비자용 플래시 메모리 제조사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엔터프라이즈급 낸드 플래시 메모리와 고성능 SSD를 공급하는 순수 낸드 전문 기업이다. 그리고 이 회사가 독립된 상장사로 시장에 등장한 건 불과 1년여 전이다.

샌디스크는 지난해 2월 21일 웨스턴 디지털로부터 법적으로 분리됐고, 분리 사흘 뒤 나스닥에서 독립 거래를 시작했다. 웨스턴 디지털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사업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수십 년간 함께 운영해 온 회사다. 이 두 사업을 한 지붕 아래 두는 게 맞느냐는 논쟁은 오래됐다. HDD는 전통적인 저성장 하드웨어 산업이고, 낸드 메모리는 스마트폰에서 데이터센터, AI 인프라까지 수요가 구조적으로 팽창하는 반도체 영역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업이 한 회사 안에 묶여 있으니 낸드 부문의 가치가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행동주의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수년간 이어졌다. 결국 웨스턴 디지털은 낸드 부문을 떼어내 샌디스크라는 이름으로 독립시켰다. 분사는 세금 면제 방식으로 진행됐고, 웨스턴 디지털은 약 19.9%의 지분을 보유한 채 분리를 마무리했다.

분사 직후 분위기는 냉랭했다. 상장 초기 주가는 40달러대 후반에서 출발했으나, 분사 약 6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충격이 반도체 시장 전반을 강타하면서 지난해 4월 7일 27.89달러까지 밀렸다. 역대 최저점이었다. 시장은 샌디스크를 낸드 메모리의 전통적인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 우려 속에 거의 방치했다. 낸드 시장은 2023~2024년 극심한 공급 과잉으로 주요 제조사들이 설비투자를 대폭 줄여야 했던 어두운 기억이 있었다. 분사 직후의 샌디스크는 그 그늘을 온전히 짊어지고 출발한 셈이었다. 신생 독립 기업이라는 불확실성과 업황 부진에 대한 우려가 겹치면서 시장의 관심은 철저히 외면했다.

반전은 AI 데이터센터가 낸드 시장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거대언어모델(LLM)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스토리지 수요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속도로 불어났다. AI 모델이 학습 과정에서 생성하는 체크포인트 데이터, 긴 문맥 추론을 위한 임시 저장 공간, 검색증강생성(RAG) 시스템의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등이 모두 낸드 플래시를 필요로 했다. AI 연산이 고도화될수록 저장해야 할 데이터의 양과 접근 속도에 대한 요구가 함께 올라갔고, 이는 곧 낸드 수요의 질적 변화를 의미했다. 기존 소비자용이나 일반 서버용 낸드가 아니라, 고성능 엔터프라이즈 SSD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동안 공급 측은 따라가지 못했다. 2년간 이어진 투자 축소의 후폭풍으로 공급 부족이 현실화했고, 낸드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샌디스크가 이 국면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웨스턴 디지털의 낸드 사업 부문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샌디스크는 일본 키옥시아와의 합작법인을 통해 대규모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합작 관계는 2034년까지 연장됐다. 샌디스크는 이 계약 연장의 대가로 키옥시아에 11억 6500만 달러를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일본 요카이치 공장에서 3D 낸드 플래시를 공동 생산하며 삼성전자와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상위권 규모의 생산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HDD라는 짐을 내려놓고 낸드 전문 기업으로 독립하자마자, 샌디스크는 이 생산 기반 위에서 AI 수요를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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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스크를 단순한 경기 회복 수혜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차세대 기술 전환이다. 샌디스크가 개발한 BiCS8은 고층 적층 구조의 낸드로,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면서도 전력 효율이 높다. 데이터센터 운영자 입장에서는 서버 랙당 스토리지 밀도와 전력 효율이 모두 중요한 선택 기준인데, BiCS8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한다. 이 기술이 본격적으로 양산 비중을 높여가는 시점이 공교롭게도 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 시기와 겹쳤다. 기술 전환기와 수요 폭발기가 동시에 찾아오면서 샌디스크는 가격 협상력과 시장 점유율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맞았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대형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구매 방식 변화도 샌디스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들은 과거 분기별 현물 시장에서 메모리를 사들이는 방식을 써왔다. 하지만 AI 인프라에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마당에 메모리 조달 실패로 데이터센터 가동이 멈추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조달 전략이 바뀌었고, 이는 샌디스크 입장에서 안정적인 물량과 가격 협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분기마다 가격이 요동치는 현물 시장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예측 가능한 매출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샌디스크의 이익 지속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근거가 됐다.

회사 자체의 전략적 행보도 적극적이었다. 샌디스크는 대만 낸야 테크놀로지에 10억 달러를 투자하며 다년간 DRAM 공급 계약을 맺었다. 낸드와 DRAM을 아우르는 메모리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SK하이닉스와는 차세대 고대역폭 플래시(HBF) 기술의 표준화 작업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HBF는 AI 가속기에 대용량 플래시를 근접 배치하는 새로운 메모리 아키텍처로, 차세대 AI 칩 설계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샌디스크가 이 표준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부품 공급사를 넘어 AI 인프라 생태계의 핵심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독립 기업으로 출발한 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공급망 확보와 기술 동맹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강화한 셈이다.

샌디스크가 웨스턴 디지털의 그늘에서 독립함으로써 얻은 또 다른 이점은 전략적 자유도다. 웨스턴 디지털 시절에는 HDD 사업의 설비투자 수요와 낸드 사업의 기술 투자 수요가 한 예산 안에서 경쟁해야 했다. 독립 이후에는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오롯이 낸드와 SSD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대형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장기 공급 계약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HDD 사업이라는 변수 없이 낸드 공급 능력 전체를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도 샌디스크의 협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실제로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고클러는 대형 고객들이 분기별 현물 구매 방식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십억 달러짜리 AI 사업이 분기별 부품 조달 실패로 멈추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적은 이 모든 변화를 숫자로 증명했다. 2025 회계연도 연간 매출은 73억 달러를 넘어섰고 매출 총이익률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가장 최근 분기에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1% 급증했고 주당순이익은 시장 예상치를 대폭 상회했다.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6%, 전분기 대비 64% 급증했다. 다음 분기 가이던스로 제시한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50% 안팎 더 높은 수준이다. 이익률 역시 불과 1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이 수치들이 보여주는 건 단순한 업황 반등이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비용 구조가 개선되고,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높아지고, 고객 기반이 소비자에서 하이퍼스케일러로 이동하는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목표 주가는 경쟁적으로 올라갔다. 번스타인은 목표 주가를 1250달러로 제시하며 낸드 업사이클이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길고 강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씨티도 목표가를 980달러로 상향했다. 오는 30일 예정된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시장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지수 편입 효과도 추가 상승 동력으로 꼽혔다.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와 인덱스 펀드는 편입 발효일인 4월 20일 이전까지 의무적으로 샌디스크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 수조 달러 규모의 패시브 자금이 강제 매수에 나서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S&P500 편입 때도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번 나스닥100 편입은 그 경험을 반복하는 두 번째 이벤트였다.

물론 낸드 시장이 사이클 산업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공급 과잉이 재현되면 가격은 다시 급락할 수 있고,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잠재 시장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관세 등 거시경제 변수에 대한 주가 민감도도 높은 편이다. 주가가 1년 만에 30배 가까이 뛴 종목인 만큼 밸류에이션 부담도 적지 않다. 조정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럼에도 샌디스크가 단순한 낸드 사이클 수혜주 이상의 평가를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의 스토리지 수요는 스마트폰 교체 주기나 PC 보급률 같은 전통적인 낸드 수요 변수와는 다른 구조적 동인에서 비롯된다. 이 수요의 크기와 지속성이 이전 사이클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에 확산했고, 그 기대 위에서 샌디스크의 주가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웨스턴 디지털의 낸드 사업 부문으로 수십 년을 보낸 뒤 독립 기업으로 출발한 샌디스크가 상장 1년여 만에 나스닥100을 대표하는 종목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배경이다. 1년 전 27달러였던 주식이 950달러를 넘어선 건 단순한 주가 급등이 아니라 AI 시대 메모리 산업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이기도 하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