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넷플릭스 1위를 휩쓸었던 한국 드라마가 백상예술대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최고 17.1% 시청률로 화제를 모았던 tvN ‘폭군의 셰프’가 아니라,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이었다. 공개 당시 화제성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작품성과 완성도를 다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사무국은 지난 13일 방송 부문 후보 라인업을 공개했다. 심사 대상은 2025년 4월 1일부터 2026년 3월 31일까지 지상파·종편·케이블·OTT에서 공개된 콘텐츠다. 그 결과 ‘은중과 상연’은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예술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조연상까지 총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JTBC ‘미지의 서울’과 함께 최다 노미네이트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고른 경쟁력이다. 특정 부문에만 치우친 후보작이 아니다. 연출과 대본, 촬영, 배우, 작품 전체까지 고르게 평가받았다.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조영민 감독은 연출상 후보, 송혜진 작가는 극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엄성탁 촬영감독은 예술상 후보가 됐고, 김고은과 박지현은 나란히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김건우 역시 조연상 후보로 포함됐다. 한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결과다.

‘은중과 상연’은 자극적인 설정으로 밀어붙이는 드라마가 아니다. 대신 오래된 관계가 어떻게 사람을 흔들고, 끝내 삶 전체를 바꾸는지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은중과 상연, 두 인물의 시간을 따라간다. 10대 시절 처음 만나 40대가 되기까지, 서로를 누구보다 좋아하고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질투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촘촘히 쌓인다. 흔한 로맨스도, 익숙한 가족극도 아니다. 그런데도 누구보다 깊게 남는다. 이 드라마의 힘은 바로 그 낯선 진정성에 있다.
인물 설정도 선명하다. 은중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사랑을 듬뿍 받고 큰 인물이다. 반면 상연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결국 상연이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조력 사망을 결정하면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작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분명해진다. ‘은중과 상연’은 사건보다 감정, 전개보다 관계의 균열을 택한 드라마다.

완성도를 끌어올린 건 제작진의 결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로 섬세한 감정 묘사에 강점을 보여준 조영민 감독과 송혜진 작가가 손을 잡으면서 드라마의 정서는 한층 단단해졌다. 여기에 김고은과 박지현의 조합이 더해지며 작품의 중심축이 완성됐다. 두 배우는 친구이자 경쟁자, 동경과 상처가 뒤섞인 복합적인 관계를 밀도 있게 표현해내며 큰 호평을 받았다.
김고은은 당시 제작발표회에서 “처음에는 '너무 잔잔한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깊이와 서사가 쌓이는 과정이 마음을 참 많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어 ‘조력 사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눈물을 보이며 “이 부분이 제 '눈물 버튼'(매번 울게 만드는 대목) 같다”며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보내줘야 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가장 많이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작품이 배우에게도 단순한 출연작 이상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백상 후보 발표가 의미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은중과 상연’이 단지 공개 당시 반짝 화제를 모은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증명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1위를 휩쓸었던 대중적 흡입력에 이어, 시간이 지난 뒤에는 시상식 후보 발표로 다시 존재감을 입증했다. 많이 본 드라마를 넘어, 오래 남는 드라마가 됐다는 얘기다.
결국 이번 결과는 하나를 보여준다. 시장을 흔드는 건 늘 가장 시끄러운 드라마가 아니라, 가장 깊게 남는 드라마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뒤흔든 ‘은중과 상연’은 이제 백상에서도 가장 또렷한 이름이 됐다. 화제성으로 시작해 작품성으로 증명한 드라마. 그래서 지금 다시 이 작품에 시선이 몰린다.

'제62회 백상예술대상 with 구찌' 방송 부문 후보 발표
드라마 작품상
tvN ‘미지의 서울’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tvN ‘폭군의 셰프’
연출상
박신우 감독(tvN ‘미지의 서울’)
우민호 감독(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유영은 감독(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조영민 감독(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조현탁 감독(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극본상
권종관 작가(넷플릭스 ‘자백의 대가’)
송혜진 작가(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이강 작가(tvN ‘미지의 서울’)
이선 작가(KBS 2TV ‘은애하는 도적님아’)
추송연 작가(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예술상
강승원 음악감독(KBS 2TV ‘더 시즌즈’ 음악)
김남식 시각효과감독(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VFX)
김태성 촬영감독(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촬영)
엄성탁 촬영감독(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촬영)
윤진희 미술감독(넷플릭스 ‘크라임씬 제로’ 미술)
남자 최우수 연기상
류승룡(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박진영(tvN ‘미지의 서울’)
이준호(tvN ‘태풍상사’)
지성(MBC ‘판사 이한영’)
현빈(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여자 최우수 연기상
김고은(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박보영(tvN ‘미지의 서울’)
박지현(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신혜선(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임윤아(tvN ‘폭군의 셰프’)
남자 조연상
김건우(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유승목(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유재명(JTBC ‘러브 미’)
장승조(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진선규(넷플릭스 ‘애마’)
여자 조연상
명세빈(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원미경(tvN ‘미지의 서울’)
이이담(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임수정(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하윤경(tvN ‘언더커버 미쓰홍’)
남자 신인 연기상
김진욱(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배나라(넷플릭스 ‘약한영웅 Class 2’)
이채민(tvN ‘폭군의 셰프’)
정준원(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홍민기(KBS 2TV ‘은애하는 도적님아’)
여자 신인 연기상
김민(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방효린(넷플릭스 ‘애마’)
신시아(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전소영(ENA ‘아너: 그녀들의 법정’)
최지수(tvN ‘언더커버 미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