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방산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프랑스의 차세대 전투기 라팔 F5 개발 프로젝트에서 35억 유로(한화 약 6조 원) 규모의 투자를 전격 철회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자금 문제가 아니었다. UAE는 소스코드 공개와 지식재산권 공유를 요구했고, 프랑스는 이를 거절했다. 협상은 결렬됐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KF-21 보라매가 조용히 들어서고 있다.

KF-21은 지난달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양산 1호기 출고식을 열며 개발에서 실전 배치로의 전환을 알렸다. 2000년대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첨단전투기 자체 개발 선언으로 시작된 KF-X 사업이 2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1600회에 달하는 비행시험을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통과했고, 하늘의 눈으로 불리는 AESA 레이더를 포함해 주요 장비 대부분을 국산화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 생산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술 주권을 원하는 중동… KF-21이 라팔보다 매력적인 이유
UAE가 원하는 건 단순한 전투기가 아니다. 자국의 미사일을 탑재하고, 자국 기술자가 정비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독자적으로 개량도 가능한 '진짜 내 전투기'다. 기술 주권이 협상의 무게추인 셈이다. 한국은 이 지점에서 유럽 경쟁사들과 다른 입장을 취해왔다. UAE의 자국산 미사일을 KF-21에 통합하는 방안을 포함해 현지화와 기술 이전에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과 향후 5세대급으로의 블록 업그레이드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KF-21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공동개발국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도 일단 봉합됐다. 인도네시아는 당초 전체 개발비의 20%인 1조 6000억 원을 분담하기로 했으나 경제난을 이유로 6000억 원으로 줄였다. 정부는 삭감된 분담금을 수용하는 대신 시제기 6대 중 1대와 기술 자료를 제공하기로 실무 합의했다. 수익 측면에서는 손해지만,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인도네시아에 KF-21 16대를 수출하는 협의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다.
엔진 독립 없이는 반쪽짜리 수출… 소재가 관건
다만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KF-21의 엔진은 미국 GE의 F414 계열이다. 국내에서 생산하지만 설계와 기술 원천은 미국에 귀속돼 있다. 문제는 수출 단계에서 드러난다. 엔진 기술의 소유권이 미국에 있는 한, 수출 대상국 선정부터 협상 일정까지 미국의 수출 승인 절차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과거 T-50 고등훈련기의 우즈베키스탄 수출이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전례는 지금도 되풀이될 수 있는 리스크다.

엔진 국산화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보다 소재에 있다. 제트엔진은 초고온·초고압·초고속 환경에서 작동하는 만큼 내열성과 강도, 경량성을 동시에 갖춘 특수 합금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내 항공엔진용 소재의 해외 의존도는 2023년 기준 약 79%에 달한다. 엔진 회전체에 들어가는 내열합금은 사실상 전량 수입이다. 1~2mm의 결함으로도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소재 개발은 신뢰성 확보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단순히 금속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원료를 어떤 공정으로 가공해 어떤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지 완벽히 통제하는 수준까지 도달해야 한다.
정부는 2040년까지 3조 3000억 원을 투입해 독자 항공엔진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2월 국가 정책으로 확정했다. 올해 5월에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무인기용 엔진의 최초 시동 시험이 예정돼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과 유럽에 R&D 거점을 두고 2028년까지 엔진 연구 인력을 현재의 두 배 수준인 500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UAE의 이탈은 KF-21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문을 끝까지 통과하려면 중동 국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즉 다른 나라의 허락 없이 운용하고 개량할 수 있는 전투기를 완성해야 한다. 엔진 국산화는 그 마지막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