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초대 총리를 지낸 뒤 조선 국권 침탈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로 추정되는 글씨가 한국에서 발견됐다.

글씨를 교도통신에 공개한 한국의 전직 국회의원에 따르면,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일했던 한국인 남성의 후손이 이 작품을 보관하다가 올해 1월 "한일 간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자신에게 양도했다.
궁내부 직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위로 이 글씨를 소장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옛 소유자는 식민지 시대 대일 협력자를 가리키는 '친일파'라고 비난받을 것을 우려해 오랫동안 은밀히 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 글씨가 이토의 친필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제작 시기와 구체적인 배경은 밝혀지지 않았다.
글씨에는 '여화낙처만지화연우'(餘花落處滿地和烟雨)라고 적혀 있다. 교도통신은 이를 '지는 꽃잎이 지면에 가득 떨어지고 봄비와 조화를 이뤄 아름답구나'로 해석했다.
글씨가 담고 있는 의미를 두고 한일 양측 전문가 간의 해석이 엇갈렸다. 한국 전문가는 일본이라는 꽃이 조선 땅에 쏟아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성과를 칭송하는 내용이라며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한국인에게는 굴욕적 문구"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본 서적 역사를 연구하는 일본인 연구자는 "벚꽃의 낙화와 봄비의 조화를 노래한 것으로 정치적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이토의 글씨가 한국에서 과거에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고 전하면서도, 조선 침략의 원흉이라는 부정적 인상 때문에 작품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고 남아 있는 작품의 실태 역시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고 짚었다.
한국에서 이토의 글씨가 논란이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에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현 화폐박물관) 머릿돌에 새겨진 '정초'(定礎) 두 글자가 이토의 친필로 판명됐다. 문화재청은 전문가 자문단의 현지조사를 거쳐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후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으나, 2021년 문화재위원회는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남긴다는 취지에서 머릿돌을 보존하되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유신을 이끈 핵심 인물로, 일본 근대화와 제국주의 확장을 이끈 핵심 정치인이다.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내며 메이지 헌법 제정을 주도하고 의회 정치를 확립한 인물이다.
1905년에는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고 1906년 초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해 대한제국의 주권 박탈을 진두지휘했다.
외적으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의 위상을 높였으나, 한반도에 대해서는 을사늑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초대 통감으로서 식민지화의 기틀을 마련한 침략의 원흉이다.
그는 일본 내에서 근대 국가의 기틀을 닦은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피침략국들에는 동양 평화를 파괴한 장본인으로 기억되며, 1909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처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