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 업계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과거 일본의 분위기만을 흉내 낸 ‘일본풍’ 콘텐츠에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일본 현지에서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를 직접 들여오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일본 현지 맛집과 디저트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는 주말 쇼핑객을 끌어모으는 백화점의 핵심 집객 카드로 부상하며 유통업계의 새로운 흥행 공식이 되었다.
현대·신세계, 일본 팝업 대폭 확대… “흥행 보증수표 됐다”
최근 현대백화점의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현대백화점이 선보인 일본 식품 브랜드 팝업스토어는 총 5건에 달한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 단 1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수치다. 연말연시와 설 명절로 이어지는 유통가 대목에 일본 콘텐츠를 전면에 배치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더현대서울과 압구정본점 등 핵심 점포에는 파이매니아, 이모야킨지로, 블랭크도넛, 덴코세카, 후쿠사야 등 현지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이 중 일본에서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유명한 파이 브랜드 ‘파이매니아’는 단 2주간의 행사 기간에만 약 6,000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를 증명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공격적으로 일본 브랜드 유치에 나서고 있다. 스노우즈, 도쿄밀크 치즈팩토리, 슈가버터트리 등 일본 내에서도 줄을 서야 구할 수 있는 F&B 브랜드들을 연달아 소개했다. 특히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에서 진행된 ‘스노우즈’ 팝업은 매일 아침 조기 품절 사태가 벌어질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신세계 측은 바이어들이 직접 일본 현지를 발로 뛰며 콘텐츠를 발굴한 결과, 전년 1건이었던 일본 관련 팝업을 올해 3건으로 늘려 잡았다고 설명했다.
왜 지금인가… ‘노재팬’ 가고 ‘엔저·근거리’ 트렌드 왔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일본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 이상의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가장 먼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꼽힌다. 과거 한동안 국내 소비 시장을 경직되게 만들었던 ‘노재팬’ 분위기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일본 브랜드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크게 완화됐다.

여기에 기록적인 ‘역대급 엔저’ 현상과 가깝고 편한 일본 여행의 일상화가 맞물렸다. 일본을 직접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현지에서 먹어본 맛을 한국에서도 즐기려는 보상 소비 심리가 강해졌다. 소비자들은 이제 ‘일본 스타일’이 아닌 ‘일본 현지 브랜드 그 자체’를 원하고 있으며, 백화점은 이러한 요구를 가장 빠르게 반영해 차별화된 콘텐츠로 내놓고 있다.
실제로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식도락 여행’ 트렌드는 백화점 지하 식품관을 ‘작은 일본’으로 만들고 있다. 편의점 음식(코비니) 열풍부터 시작해 오마카세, 야키토리, 쿠시카츠 등 특정 메뉴에 집중한 전문 다이닝이 인기를 얻으면서, 소비자들은 더 정교하고 세분화된 일본 현지의 맛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의 전략 수정… “중국 대신 한국이 기회의 땅”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 전략이 수정된 점도 이번 열풍의 숨은 배경이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에게 가장 큰 시장은 중국이었으나, 최근 지정학적 위기와 중국 내 비즈니스 환경 악화로 인해 한국을 대안 시장으로 낙점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치적 변수가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중국 내에서 일본 브랜드에 대한 유무형의 압박인 이른바 ‘한일령(限日令)’ 기조가 형성됐다. 중국 시장에서 성장이 막힌 일본 식품 기업들이 문화적 동질성이 높고 일본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일본 브랜드 입장에서 한국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을 넘어 글로벌 확장을 위한 ‘테스트베드(Testbed)’ 역할을 한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아시아 전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현지의 유명 브랜드들이 백화점 팝업스토어를 통해 한국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희소성’과 ‘현지성’이 가르는 백화점 집객 경쟁
유통 업계 전문가들은 당분간 일본 브랜드 소싱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된 시대에 오프라인 백화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방문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오직 이곳에만 있는 콘텐츠’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현지 매장과 똑같은 맛과 분위기를 구현한 팝업스토어는 강력한 집객 효과를 보장한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현지 문화를 체험한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희소성과 현지성을 동시에 갖춘 브랜드는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연관 구매를 유도하는 핵심 카드”라고 설명했다.
결국 지금의 일본 브랜드 열풍은 소비자들의 수요 회복, 일본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 그리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국내 백화점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유통업계는 앞으로 디저트를 넘어 주류, 의류,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일본 현지 브랜드의 국내 진출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