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정충원 교수팀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연구진은 경산 임당·조영 유적의 무덤 44기에서 수습된 78명의 유골을 대상으로 게놈(유전체) 분석을 실시했다. 이 유적은 4~6세기 100여 년에 걸쳐 조성된 신라 시대 지방 지배층의 집단 매장지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지난 8일 게재됐다.
연구진은 78명 중 42명이 서로 혈연관계임을 확인했다. 1촌 관계 11쌍, 2촌 관계 23쌍, 3촌 이상 관계 20쌍 등 총 54쌍의 혈연관계가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13개 가계도를 재구성했는데, 일부 가계는 임당 유적과 조영 유적 두 곳에 걸쳐 있을 만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것은 근친혼의 흔적이다. 근친혼이란 사촌 이내의 가까운 친족끼리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가까운 혈연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유전자 배열에서 동일한 염기서열이 길게 반복되는 구간, 즉 ROH(runs of homozygosity)가 길게 나타난다. 이 ROH가 길수록 부모가 가까운 혈연임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78명 가운데 5명에서 20cM(센티모건: 유전적 거리 단위) 이상의 긴 ROH를 발견했다. 특히 한 여성 개인(IMD003)의 경우 ROH가 319cM에 달했는데, 이는 그 여성의 부모가 사촌 이내의 혈연 사이에서 결혼했음을 의미한다. 사촌 간 결혼도 현재 기준으로는 근친혼에 해당하는데, IMD003의 부모는 그보다도 더 가까운 혈연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확인됐다. 순장자 가운데 아버지와 딸이 함께 부장실에 매장된 사례가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이 부녀는 각각 근친혼으로 태어난 개인들로, 근친혼이 2대에 걸쳐 이어진 정황이 포착됐다. 
주목할 점은 이 근친혼의 흔적이 무덤의 주인인 지배층에게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영 유적에서 확인된 희생 매장자 JOY010과 JOY011도 근친혼으로 태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임당·조영 유적에는 무덤 주인과 함께 산 채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순장(殉葬)' 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이들 희생자 사이에서도 근친혼의 흔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근친혼이 신라 왕족이나 최상위 지배층만의 관행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역사 기록은 신라 왕실의 근친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어, 근친혼이 지배층 전반 혹은 그 아래 계층까지 퍼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 유전체 분석은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유전적으로 뒷받침했다.
신라는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골품제(骨品制)'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를 운영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 왕실은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까운 친족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구는 그러한 문헌 기록을 DNA 수준에서 처음으로 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별에 따른 혈연 구조도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다. 유럽의 고대 사회 유전체 연구에서는 대부분 부계 중심의 거주 방식, 즉 여성이 결혼 후 남편 집안으로 이동하는 '가부장적 외혼제(female exogamy)' 패턴이 확인됐다. 그러나 임당·조영 유적에서는 성인 여성들 사이에도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혈연 연결망이 나타났다. 여성이 결혼 후에도 자신의 혈족과 함께 매장된 사례가 확인됐고, 혈연 관계를 통해 여성이 지역 공동체 안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임당·조영 사회가 성별에 따른 이주 편향이 제한적인, 공동체 내 혼인 관행을 유지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무덤 주인과 순장자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어땠을까. 연구 결과 두 집단은 짧은 구간의 유전자 공유는 있었으나 가까운 혈연관계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예외만 있었다. 즉 지배층과 순장자는 같은 유전적 배경을 가진 집단 출신이었으나 서로 다른 혈연 계열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유전자 구성에서도 임당·조영 고대인들은 현대 한국인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야요이 이전 일본 열도의 선주민인 조몬인의 혈통은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한국 고대 사회의 가족 구조와 혼인 풍습을 유전체 수준에서 밝혀낸 첫 번째 사례라고 밝혔다. 다만 분석 대상이 임당·조영 유적이라는 특정 지역 사회에 국한돼 있어 신라 전체나 삼국시대 한국 사회 전반의 특성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함께 밝혔다. 한반도의 산성 토양 환경으로 인해 고대 DNA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분석 가능한 개인 수가 제한적이었다는 한계도 있다. 연구진은 향후 경산 대동·부적 유적, 대구 괴전동 유적 등 인근 신라 유적에 대한 추가 고인류 유전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