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몰하는 배 안에서 선원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격이다. 6·3 지방선거를 80여 일 앞둔 국민의힘의 현주소다.
9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47%)과의 격차가 무려 29%포인트나 된다.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이날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선 후보 간의 저격과 지도부의 경고 사격이 오갔다.
경북지사 경선에 나선 김재원 최고위원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경쟁 후보인 이철우 현 도지사를 겨냥해 "이 후보는 지방 인터넷 언론사를 입막음하기 위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한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돼 있다"고 공개 석상에서 거론했다. 이어 "이 후보가 당 후보로 본선에 진출하면 선거 기간 내내 검찰의 기소와 민주당의 파상 공세를 받을 것"이라며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촉구했다. 당내 공식 절차를 통해 이의 신청을 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공개 문제 제기가 불가피했다고도 했다. "당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어서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을 양해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논의해야 할 최고위원회의 발언대를 경쟁자 공격의 장으로 활용한 셈이었다. 회의장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지도부는 즉각 제동에 나섰다. 장동혁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절제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에둘러 경고했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당원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단체장 후보로 공천 신청하는 즉시 최고위원에서 사퇴하도록 규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설마 이런 사태가 발생하겠느냐는 안일한 인식 하에 규정을 두지 못한 점에 대해 당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공천관리위원회도 입장문을 내고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경선 후보자는 불필요한 오해나 공정성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 공식 회의 등 공개 석상에서 본인 선거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며 "모든 당직자와 후보자는 개인의 이익보다 선당후사의 자세로 임해 달라"고 촉구했다.
곧이어 양향자 최고위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경기지사 후보로 공천 신청을 한 그는 공관위가 "인지도 높은 인사를 찾겠다며 무작정 결정과 발표를 미루면서 기존 신청자의 위상과 경쟁력을 쪼그라뜨렸다"고 비판했다. 추가 공모를 앞두고 당 일각에서 반도체 전문가, AI 전문가, 삼성 임원 출신 후보를 찾는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을 두고 "30년 글로벌 기업인이자 반도체 엔지니어이고 AI 전략 경영학 박사인 당 반도체AI첨단산업위원장을 두고 이 무슨 해괴한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추가 공모에 응할 뜻을 비친 조광한 최고위원을 향해서는 "경선에 이기면 개혁신당에 후보를 양보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게 이기는 공천이냐"고 따졌다. "이런 패배주의와 비상식 때문에 정청래 따위에게 후보도 내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도 했다.
보수 진영 평론가들 사이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서정욱 변호사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출마 전 판세가 불리해지면 회의에 나오지 않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었는데 오늘 회의에 나와 이철우 지사를 상대 정당보다 더 원색적으로 비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고위원회의가 경쟁 후보를 공격하는 자리냐"며 "명백한 해당 행위이자 징계 사안"이라고 했다.

대구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컷오프된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이날 채널A 유튜브 인터뷰에서 "분열을 우려해 참고 넘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지도부가 반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공천 과정에 강한 문제를 제기했다.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도 굽히지 않았다.
역시 경선에서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같은 날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구시장 선거가 전국적 관심을 받는 것은 잘못된 컷오프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문제를 바로잡고 다시 출발해야 국민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과 1대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구시장 도전 의지도 재확인했다.
다만 지도부 평가에서는 두 사람의 입장이 엇갈렸다. 주 부의장이 장 대표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간 반면 이 전 위원장은 "지도부를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허우적대는 틈을 파고들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대구·경북을 연달아 찾으며 현장 민심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북 오중기 후보를 단수 공천한 데 이어 영덕 대게 축제장을 무박 2일로 방문했고, 지난 8일에는 다시 대구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경북 상주 포도 재배 농가까지 찾았다. 민주당이 이렇게 대구와 경북에 공을 들인 적이 있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장동혁 대표가 지역 일정에 나서지 않는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그런 장 대표를 겨냥해 당내에선 "지지율이 낮으니 지역에서도 불러주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재보선 출마 행보까지 겹치며 국민의힘 당내 구심력은 더 흐트러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8일 국민의힘 부산 북구갑 당협위원장인 서병수 전 의원과 만나 재보선 출마 관련 논의를 나눈 것으로 파악됐다. 친한계는 주호영 부의장의 무소속 출마 여부까지 정해지면 한 전 대표가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9일 국회에서 책임당원 100만명 돌파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장동혁 체제 출범 당시 72만명이던 책임당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며 "40% 이상 증가했다"고 자축했다.
글에서 언급한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2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