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성폭행” 신고 20대 알바, 무혐의에 이의신청서 쓰고 숨져

2026-04-10 10:08

사건 직후 “죽고 싶어” 친구에 카톡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주점 업주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한 20대 아르바이트생이 경찰의 무혐의 결정에 이의신청서를 낸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0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20대 알바생 A(여) 씨는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2시쯤 경기 안산시 단원구 한 주점의 40대 사장을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새벽 영업을 마치고 오전 11시 반쯤까지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항거 불능 상태로 성폭행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신고 약 1시간 뒤인 오후 3시 반쯤 A 씨를 조사해 10여쪽 진술 조서를 작성했다. 조사 뒤 성폭력 상담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측정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5%로, 운전면허 취소 기준(0.08%)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이후 경찰은 A 씨를 추가로 부르지 않은 채 지난 2월 14일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가게 사장 측이 제출한 보안카메라(CCTV)에 A 씨가 사건 직후 웃으며 대화하고 걷는 모습이 포착된 점, 사장이 '합의에 따른 관계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A 씨가 항거 불능 상태였거나 사장이 이를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불송치 통보서는 지난 2월 18일 A 씨에게 전달됐다. 3일 뒤인 21일, A 씨는 이의신청서와 함께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이 확인한 A 씨의 휴대전화에는 사건 직후 친구에게 사장이 자신을 간음했다는 내용과 "죽고 싶어"라는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사건 11일 전에도 친구에게 '사장한테 성추행당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자료들은 모두 경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은 "경찰이 단편적인 증거로만 판단했다"고 반발한다.

경찰 관계자는 "CCTV에서 당시 상황이 전부 확인되기 때문에 피해자 2차 조사 등을 하지 않았다"면서 "(디지털 증거는) 당시 피해자가 제출하지 않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지난달 16일 'CCTV 시간 오차 확인 및 참고인 대면 조사 등 추가 증거를 확보하라'는 취지로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경찰은 참고인 2명을 추가 조사한 결과 등을 지난 8일 검찰에 보고했다.

가게 사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특별히 따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만 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요구권이 실제로 작동한 사례이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검경 수사권 조정 체계에서 검찰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을 뿐, 직접 수사에 나서는 것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안산지청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것은 지난달 16일이었지만, A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그보다 한 달 앞선 2월 21일이었다. 이의신청 이후에도 구제 절차가 신속히 작동하지 못한 셈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그치지 않고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수사권을 다시 검찰에 집중시키는 것은 수사권 조정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피해자 보호와 수사 구조 개편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제도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