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공언하던 바로 그 순간, 백악관은 물밑에서 파키스탄에 휴전 중재를 압박하고 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현지시각) 미국·이란 협상에 정통한 파키스탄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의 핵심이다. 공개 발언과 비공개 행동 사이의 이 간극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민에게 과시해온 '승리의 서사'와 현실이 얼마나 달랐는지 드러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지 않으면 "문명 전체가 오늘 밤 사라질 것"이라며 극한의 압박 수사를 동원했다. 그러나 FT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1일 이란 발전소 타격을 처음 위협한 시점부터 이미 휴전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란 정권의 예상 밖 저항이 워싱턴을 당혹케 한 데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경기와 미국 소비자 물가를 위협하는 현실이 겹쳤다.
이란은 지난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5주 이상 버텼다. 미 정보당국의 예측을 웃도는 내구력이었다. 핵심 군사 인프라가 타격을 입었음에도 이란 지도부는 흔들리지 않았고, 혁명수비대는 걸프만 일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은 사실상 봉쇄 상태였으며, 에너지 시장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충격을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선택한 채널은 파키스탄이었다. FT에 따르면 워싱턴은 무슬림 다수 국가이자 역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온 파키스탄이 이란에 제안을 전달하면 수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를 실질적으로 이어 준 인물은 파키스탄의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이었다. 그는 이란 정치·군사 지도부와 트럼프 대통령, 제이디 밴스 부통령,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특사 사이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역할을 맡았다. 협상 마감 시한으로 설정된 7일 오후 8시(미 동부시간)를 앞두고, 무니르 총장은 미국 측 핵심 인사들과 긴박한 교신을 이어갔다.
미국의 제안은 단순했다. 미국이 군사 공격을 중단하는 대신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즉각 개방한다는 임시 휴전안이었다. 협상은 순탄치 않았다. 양측의 간극은 상당했으나 FT에 따르면 이란 정치 지도부는 점차 우라늄 비축량 제한 수용 쪽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원칙적 합의에 이르렀다.
결정적 장애물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였다. 강경 노선의 혁명수비대 일부 파벌은 해협 개방과 휴전에 완강히 반대했다. 이들은 합의 직전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의 석유화학 중심지 주바일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파키스탄 관료는 이를 "협상을 결렬시키려는 마지막 시도"로 규정했다. 격분한 파키스탄은 이란 측에 "고립을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파키스탄이 단순한 전달자가 아닌 협상의 실질적 중재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FT는 베이징이 이란에 해협 개방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이란은 중국으로부터 더 실질적인 군사 지원을 기대했으나, 걸프만 전역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중국은 조기 종전을 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AFP와의 통화에서 중국이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에 동의했다.
결국 7일 밤 마감 시한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2주간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하게 개방’하는 것을 조건으로 2주간 군사 공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란은 공격이 중단될 경우 방어 작전을 멈추고 해협 통행을 허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외교적 내막을 의도치 않게 노출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휴전 성사 소식을 X(옛 트위터)에 공개하면서 게시물 첫 줄에 ‘초안, 파키스탄 총리의 X 메시지’라는 문구를 그대로 올렸다가 불과 1분 만에 삭제했다. 이 실수는 샤리프 총리가 게시물을 사전에 누군가에게 승인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협상의 주도권이 총리실이 아닌 군부에 있었고, 파키스탄이 자국 외교의 성과로 포장하려 했던 중재가 실상 미국의 필요에 의해 동원된 채널이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결과를 "군사적 목표를 완전히 달성한 역사적 승리"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FT가 발굴한 협상의 뒷이야기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휴전을 구걸하고 있다고 공언해왔지만, 막후에서는 워싱턴이 먼저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 설득에 나섰다. 백악관을 움직인 것은 군사적 승리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유가 급등과 이란의 예상 밖 저항에 대한 우려였다는 것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의 후속 협상은 10일 시작될 예정이다. 다만 휴전의 토대는 여전히 취약하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군사 작전을 이어가면서 혁명수비대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막겠다고 나섰고, 레바논 포함 여부를 둘러싼 미국·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이란 간의 엇갈린 해석도 불씨로 남아 있다. 40여 일간의 전쟁이 남긴 불신의 깊이를 감안할 때 이번 2주의 휴전이 항구적 평화의 출발점이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