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지를 펼치는 순간, 렌즈 위로 정답이 흘러내린다. 손끝으로 반지 모양의 리모컨을 살짝 누르기만 하면 된다. 감독관은 눈치채지 못한다. 일반 안경과 구별이 불가능한 외형 탓이다. 중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스마트 안경을 활용한 부정행위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단순한 컨닝을 넘어 실시간 정답 확인까지 가능해지면서 수백 년 이어온 시험 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IT 전문 비영리 매체 레스트 오브 월드(Rest of World)는 지난달 30일 이 같은 실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허베이성에 사는 대학생 비비안(가명)은 로키드(Rokid) AI 안경을 이용해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한다고 직접 털어놨다. 안경에 내장된 초소형 카메라가 시험지를 스캔하면, 연동된 생성형 AI가 문항을 분석해 실시간으로 답을 렌즈 디스플레이에 띄워준다. 비비안은 "낙제할 것 같은 과목이라면 어떤 과목이든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안경을 같은 학교 학우들에게 빌려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개인적 일탈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는 스마트 안경 대여 사업이 성행하고 있다. 선전에서 대여업을 하는 커창쓰는 지난 4개월간 로키드와 알리바바 계열 스마트 안경을 1000명 이상에게 빌려줬다고 레스트 오브 월드에 밝혔다. 대여료는 하루 40~80위안, 우리 돈으로 약 9000~1만8000원 수준이다.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영어와 수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광고가 올라 있었다. 구매 부담을 줄인 대여 시장의 등장은 이 부정행위가 이미 '산업화' 단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효과는 실험으로도 입증됐다. 홍콩과학기술대(HKUST) 연구진은 최근 로키드 안경에 GPT-5.2를 연결해 100명 이상이 수강하는 대학원 강의의 기말고사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안경을 착용한 피험자가 92.5점을 기록하며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수강생들의 평균 점수는 72점이었다. 20점 이상의 격차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렸다. 연구를 이끈 맹지리(Zili Meng) 교수는 레스트 오브 월드에 "AI 안경을 탐지하는 감독관용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기기의 정교함이 단속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스마트 안경 상당수는 일반 뿔테 안경과 외관상 거의 차이가 없다. 메타가 에실로룩소티카와 협력해 내놓은 레이밴 스마트 안경은 12메가픽셀 광각 카메라와 5개의 마이크 배열을 탑재하고 있지만, 겉모습만으로는 평범한 선글라스와 구별이 불가능하다. 렌즈 디스플레이에 정답을 띄워주는 방식은 눈동자를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답을 확인할 수 있어 감독관의 시선을 피하기 쉽다. 반지 모양의 소형 리모컨으로 안경 기능을 조작하면 손짓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시험 감독관의 육안 점검이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중국 당국은 대학 입학시험과 공무원 시험에서 스마트 안경 사용을 이미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학교 시험 현장에서 감독관들은 이 기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학생들은 전한다. 미국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주관하는 칼리지보드가 올 3월부터 스마트 안경을 시험장 반입 금지 품목에 추가했다. 처방 렌즈가 들어간 안경도 예외가 없다. 미 공군은 사진·영상·AI 기능이 있는 스마트 안경을 제복 착용 중에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반입 금지 품목과 일반 소비재 사이의 경계가 워낙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2024년 와세다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스마트 안경으로 화학 시험지를 촬영해 SNS를 통해 지인에게 정답을 요청한 수험생이 적발됐다. 당시 감독관은 이를 일반 안경으로 착각해 현장에서 발각하지 못했고, 사후 신고를 통해서야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국내 최상위권 국립대학의 교양강의에서 수강생 절반가량이 중간고사 도중 AI를 이용해 시험을 본 정황이 컴퓨터 로그 기록으로 확인됐다. 해당 강의는 이미 기말고사에서도 같은 방식의 부정행위가 발각돼 기말 성적을 아예 부여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중간고사 성적까지 전면 취소됐다. 국내 최상위권 사립대학에서도 600여 명 규모 강의의 중간고사에서 AI를 이용한 부정행위자들의 점수가 0점 처리됐고, 또 다른 사립대학에서도 유사 사례가 적발됐다. 국내 대학들은 발견하지 못한 부정행위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부는 뒤늦게 수행평가 중 AI 활용 부정행위 관리 방안을 마련해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AI 활용 범위 설정, 학생 사전 교육, 평가 설계 방향 등 5개 영역으로 구성된 이 지침은 2026학년도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반영됐다. 그러나 스마트 안경처럼 탐지 자체가 불가능한 기기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다. AI 기술의 진화 속도를 제도가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인 이유다.
스마트 안경이 부정행위 도구로 주목받는 것과 별개로, 중국의 AI 안경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중국의 스마트 안경 출하량은 62만3000대로 전년 대비 62.3%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면서 수요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화웨이, 로키드,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고, AI 안경이 스마트폰을 잇는 차세대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제도는 느리게 따라간다. 그 간극 사이에서 부정행위는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체계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외선 카메라 탐지기 도입, 시선 패턴을 분석하는 AI 감시 시스템 구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술 시험이나 포트폴리오 평가 등 스마트 안경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평가 방식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경 하나가 시험장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는 지금, 한국 교육 시스템도 새로운 대응 논리를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