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지방선거 공약은 많을수록 좋아 보이지만, 유권자가 끝내 묻게 되는 것은 늘 같다. 무엇이 가장 급한지, 어디서 돈을 마련할지, 그리고 누가 실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지다. 조상호 더불어민주당 세종시장 예비후보가 8일 발표한 10대 공약도 결국 이 질문 앞에서 평가받게 된다. 다만 이번 공약 묶음은 세종시가 지금 안고 있는 병목을 비교적 정확히 짚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행정수도 완성의 정체, 자족 기능 부족, 재정 불안, 상가 공실, 교통 불편, 북부권 소외, 청년 정착 기반 미비까지 세종의 오래된 과제를 거의 빠짐없이 끌어왔다.
조 후보가 내세운 10대 공약의 축은 세 갈래다. 행정수도 완성, 자족기능 확충, 시민 삶의 질 향상이다. 표면적으로는 익숙한 구호처럼 보이지만,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이번 공약은 세종의 구조적 약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1호 축인 행정수도 완성에선 행정수도특별법 제정과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을 내걸었다. 대통령실과 국회, 중앙행정기관 이전 논의를 다시 제도화의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구상이다. 세종 정치권 다수가 비슷한 메시지를 내왔지만, 조 후보는 이를 도시개발기본계획과 행정수도건설기본계획, 국가중추기능 이전 기반과 연결해 말한다는 점에서 좀 더 실무형 접근을 보인다.
두 번째 축은 자족도시 구상이다. 조 후보는 인구 80만 자족도시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세종 도시개발공사 설립, 조치원 제2청사 건립, 북부권 활성화, 청년 일자리 5000개, 청년기본주택 1000호 공급, 청년청 설치를 제시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과정에서 경선 경쟁자들의 제안까지 흡수한 흔적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조 후보의 공약집 4~5쪽에는 세종 도시개발공사 설립은 고준일 전 예비후보 공약, 조치원 제2청사와 북부권 활성화는 김수현 전 예비후보 공약으로 표기돼 있다.
또 공약집 11~12쪽에는 나성 문화예술 지역특구와 글로벌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구상이 각각 김수현, 홍순식 전 예비후보 공약으로 표시돼 있다. 경선 이후 경쟁자들의 의제를 일부 끌어안아 하나의 패키지로 재구성한 셈이다. 통합 메시지로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실제 조정과 우선순위 설정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종 현실을 놓고 보면,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하게 읽히는 대목은 재정과 교통, 상권이다. 조 후보는 보통교부세 정률제 도입으로 연 1조2000억 원 확보를 추진하고, LH 개발부담금 환수와 전략적 국비 확보를 통해 재정 안정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세종시가 최근 재정 긴축과 사업 우선순위 조정 문제로 적잖은 부담을 드러낸 상황을 감안하면, 재정 문제를 공약 전면으로 끌어올린 판단은 적절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선언보다 현실 검증이 더 중요하다. 보통교부세 산정 방식 개선은 시 차원 의지로만 되는 문제가 아니고, LH 개발부담금 환수 역시 정부·행복청·LH와의 복잡한 협의가 필요하다. 세종 재정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은 맞지만, 결국 유권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가능하냐”보다 “언제, 어떤 절차로 하겠느냐”에 있다.
교통 공약도 생활 체감도가 높은 분야다. KTX 세종중앙역 신설, 광역도로·BRT 확충, 실수요 기반 버스 노선 신설, 조치원과 읍면권 교통 보완, 교통약자 통합이동체계 구축, 전기 모빌리티 확대까지 한꺼번에 담았다. 공약집 17~22쪽을 보면 내부순환, 조치원, 행복권, 경제산업권, 문화관광권을 잇는 6개 노선 신설 검토와 저이용 노선 개편, 심야 이동권 보장, 여민전 2.0까지 제시돼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세종의 불편은 단순히 차가 막히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권 간 이동이 불편하고 특히 북부권·읍면권·야간 시간대 교통이 취약하다는 데 있다. 조 후보의 공약은 이 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다만 KTX 역 신설과 광역도로망은 국가사업급 과제이고, 버스 개편은 시가 직접 손댈 수 있는 과제다. 유권자가 듣고 싶은 답은 둘을 같은 무게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손댈 수 있는 교통 처방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순서일 가능성이 크다.
상권 활성화 공약은 보다 정치적이다. 조 후보는 소상공인 매출 20% 상승을 목표로 관광특화지역 지정, 나성 문화예술 특구, 조치원 공연예술 관광특구, 고복저수지 친수공간 조성,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구상을 내놨다. 세종 상권 침체의 해법을 단순 임대료 문제나 소비 진작이 아니라 체류시간 확대와 유동인구 창출에서 찾으려는 접근이다. 논리 자체는 맞다. 세종 상권의 약점은 소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머무는 시간이 짧고 밤 시간 경제가 취약하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공약은 그림이 큰 만큼 성공과 실패가 더 분명하다. 특구 지정과 콘텐츠 유치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려면 문화 프로그램, 주차와 보행, 야간 안전, 점포 구성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몇 번 여는 것으로는 상권이 살아나지 않는다. 여기서도 결국 관건은 ‘특구 지정’ 그 자체가 아니라 운영의 밀도다.
복지 공약은 상대적으로 현실성이 높아 보인다. 세종형 유보통합, 영유아 급식 공공책임제, 공공의료기관 추가 설립, ‘세종 365-24시’ 안심 의료체계, 청소년 안전망, 노인복지관·노인보호전문기관, 복지 종사자 권익지원센터, 사회서비스 대체인력 확대 등이 묶였다. 공약집 13~16쪽을 보면 영유아 급식비 단계적 지원과 24시간 긴급돌봄 확대, 공공의료기관 추가 설립, 의료 정보 조회·예약 원스톱 체계, 세종형 단일임금제까지 적혀 있다. 이 부분은 거창한 도시 브랜드보다 시민 일상과 더 직접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체감도가 높을 수 있다. 특히 세종은 젊은 도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론 돌봄과 노인복지, 청소년 위기 대응 체계도 같이 커져야 하는 도시다. 조 후보 공약은 이런 변화한 도시 구조를 읽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강점이 있다.
정치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공약은 마지막 10번째, 시민청 설치다. 조 후보는 시민청을 통해 시민이 정책의 주체가 되는 시정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상권활성화 비상대책위원회, 교통혁신위원회, 시민문화계획 같은 참여형 운영체계를 통해 현장 목소리를 시정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세종 정치가 그동안 ‘행정수도’라는 큰 담론에 비해 생활정치의 접점이 약했다는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참여기구 신설은 이름보다 권한이 중요하다. 실제로 시민청이 부서 의견을 바꾸고 예산과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자문기구로 그칠 것인지가 차이를 만든다.
결국 조상호의 10대 공약은 세종의 약한 고리를 꽤 정직하게 드러낸다. 행정수도 완성만으로는 도시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 산업과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족도시도 공허하다는 점, 생활 불편과 돌봄 문제를 풀지 않으면 시민 체감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동시에 인정한 공약집이다. 그래서 이번 공약은 ‘방향’에선 나쁘지 않다. 문제는 방향보다 밀도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은 탓에, 무엇부터 할지 선명하지 않다는 약점도 있다. 세종시민이 보고 싶은 것은 10개의 약속이 아니라, 1년 안에 달라질 세종의 첫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조 후보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과거는 미래를 이길 수 없다”면, 그 미래는 새로운 문구보다 새로운 실행 순서로 증명돼야 한다. 공약을 크게 잡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공약을 현실에 맞게 쪼개고 버릴 것을 버리고 먼저 할 것을 정하는 일이다. 조상호의 10대 공약은 세종의 현안을 넓고 촘촘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