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NN도 주목…'100대 명산' 청량산 기암절벽에 깃든 '천년고찰'

2026-04-07 14:19

문인들이 사랑한 산, 그 안의 천년고찰
봉화 청량사

가파른 산길을 따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즈음, 시야가 트이며 단아한 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산 자락에 자리한 청량사는 속세의 소음이 닿지 않는 깊은 산중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거대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곳은 예부터 평온한 기운을 간직한 공간으로 전해져 왔다.

청량산 청량사 / 연합뉴스
청량산 청량사 / 연합뉴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인 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며, 창건 당시에는 승당을 비롯해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춘 대사찰이었으나, 긴 세월을 거치며 현재와 같은 아담하고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별도의 입장료를 받지 않으며, 산사의 고요한 분위기를 천천히 느껴볼 수 있다. 중심 법당인 유리보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시는 공간으로,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이곳의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제1919호)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삼베와 옻칠을 입혀 만든 희귀한 불상으로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함께 지닌다.

청량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청량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사찰이 자리한 청량산 역시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난 명산이다. 청량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경북 청송의 주왕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암산으로도 꼽히며 2007년에는 명승으로 지정됐다. 해발 870m의 장인봉을 주봉으로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등 12개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사찰을 감싸고 있는 형세도 인상적이다. 수려한 산세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풍경 덕분에 예로부터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학문을 닦고 자연을 노래했다. 산 곳곳에는 퇴계 이황을 비롯해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 여러 인물의 발자취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청량사가 사찰의 중심인 내청량이라면, 인근의 응진전은 외청량이라 불리는 암자다.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전해지는 응진전은 청량산에서도 경관이 뛰어난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금탑봉 아래 거대한 암벽을 등지고 선 응진전 앞에 서면 굽이치는 산맥과 발 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늦게까지 남은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장면을 만든다.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 뒤 마주하는 풍경이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 준다는 이야기가 많다.

청량산 도립공원 / ⓒ한국관광콘텐츠랩
청량산 도립공원 / ⓒ한국관광콘텐츠랩
청량산 하늘다리 / ⓒ한국관광콘텐츠랩
청량산 하늘다리 / ⓒ한국관광콘텐츠랩

청량산은 ‘학문의 산’으로도 불린다. 그 중심에는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이 있다. 퇴계는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 부를 정도로 이곳을 아꼈고, ‘청량산가’를 통해 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의 흔적은 후학들이 세운 오산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산당은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자리에 세워진 건물로,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김생굴 앞에 자리한다. 이 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 마시고 나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전해지는 총명수는 청량산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에 한층 깊이를 더한다. 김생굴을 포함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등 여러 천연 동굴 역시 이곳이 예부터 수행자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청량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청량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이범수)

이곳을 찾은 이들은 대체로 청량산과 청량사가 지닌 맑고 고요한 분위기를 인상 깊게 기억한다. 화려하게 꾸민 공간이라기보다 자연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점이 오히려 이곳의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템플스테이가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사의 새벽 공기 속에서 진행되는 명상과 차담은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사찰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있어 가볍게 오를 만한 코스라고 보긴 어렵지만,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 풍경에 몰입하게 된다.

봉화의 매력은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청량산 인근에는 봉화의 향토색이 짙게 밴 먹거리도 풍부하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봉화 송이버섯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맑은 공기와 산지 환경에서 자란 송이는 향이 진하고 식감이 좋아 가을철이면 이를 맛보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은어 요리와 봉화 한우 역시 함께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에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산채비빔밥은 청량산행 뒤 즐기기 좋은 한 끼로 잘 어울린다. 산에서 내려온 뒤 지역의 맛까지 함께 경험하면 여행의 만족도는 한층 높아진다.

청량사 경내 / 연합뉴스
청량사 경내 / 연합뉴스

역사 유적으로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청량산성도 빼놓을 수 없다. 축융봉 일대에 남아 있는 산성 터는 당시의 긴박했던 시대상을 짐작하게 한다. 산행을 마무리한 뒤 들르기 좋은 청량산박물관에서는 청량산의 생태와 지질학적 특징은 물론 봉화 사람들의 삶과 지역 문화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여행의 여운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든다.

열두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산세와 천년 고찰의 고요함이 어우러진 청량산은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이다. 봉화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찰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분주했던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연의 흐름에 시선을 두게 된다. 과거 문인들이 예찬한 수려한 풍경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발 870m 아래 펼쳐진 이 평온한 풍경 속에 잠시 머무는 시간은, 바쁜 일상 속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봉화 청량사 / 구글 지도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