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동의 구한말, 황실과 충청도 명문가가 나눈 깊은 신뢰와 꼿꼿한 선비의 절개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마련됐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장기승)은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참판댁 유물을 통해 대한제국기 황실과의 교류를 조명하는 기획전시 <대한제국 황실과 충청의 명가>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4월 6일부터 6월 28일까지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참판댁이 대대로 소중히 간직해 온 대한제국 황실의 하사품과 명문가의 일상 유물들이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시민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충남 아산 외암마을의 예안이씨 참판댁이 대한제국 황실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원집이 명성황후의 이모부가 되면서부터다. 황실과의 긴밀한 관계는 그의 손자인 퇴호(退湖) 이정렬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정렬은 1885년 명성황후의 후원으로 관직에 발을 들였으며, 1891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과 규장각 직각, 궁내부 특진관 등 요직을 거치며 고종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황제는 그를 깊이 신뢰했고, 그 신뢰의 흔적들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곳곳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전시의 백미는 고종 황제가 이정렬에게 내린 특별한 선물들이다. 1901년 이정렬이 관직을 떠나 고향인 외암마을로 내려갈 때, 고종은 그에게 ‘퇴호거사(退湖居士)’라는 호를 직접 내려주며 변치 않는 믿음을 표했다. 특히 고종은 어린 영친왕에게 명하여 퇴호거사라는 글씨와 함께 ‘한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의 ‘일심사군(一心事君)’ 네 글자를 직접 써서 하사하도록 했다. 왕조가 위태롭던 시기, 황제가 충직한 신하에게 보낸 마지막 신뢰의 증표이자 두 사람 사이의 각별한 교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정렬의 지조는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일제의 서슬 퍼런 억압 속에서도 끝내 왕조의 전통을 고수했다. 신식 학문과 단발령에 완강히 반대했으며, 자손들에게는 "일본에서 벼슬을 구하지 말라"고 엄히 가르치며 선비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참판댁 유물들은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격동의 시대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충청도 명문가의 신념과 묵직한 시대의 숨결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장기승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대한제국 황실과 충청 명문가의 역사적 교류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굳은 신념을 새롭게 느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가 열리는 충남역사박물관은 현재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어, 관람객들은 봄의 정취와 함께 역사적 사색에 잠기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6월 말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사라져간 제국의 마지막 영광과 이를 지키려 했던 충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귀중한 사료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