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상 봉쇄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프랑스와 일본 관련 선박들이 연이어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전히 발이 묶인 한국 선박 26척의 상황에 국제적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5일 외교부와 관계 당국에 따르면 한국 해운사가 운영하는 선박 26척은 한 달 넘게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고립된 채 대기 중이다. 해당 선박들에는 약 130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으며 외국 국적 선박에 승선한 인원까지 합산하면 우리 국민 170여 명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대기 중인 선박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식량 재고와 선원들의 신체적 안전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선박은 항만 대리점을 활용해 필수적인 물자를 정상적으로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정부는 주변국 항만 당국과 소통 채널을 유지해 물자가 부족한 선박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보급이 가능하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해 놨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3일과 4일 프랑스와 일본 관련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다. 3일에는 프랑스 선사가 소유한 몰타 선적의 컨테이너선 'CMA CGM 크리비호'가 이란 측이 마련한 안전 통로를 이용해 걸프 해역을 빠져나왔다. 이 경로는 이란 해안선을 따라 라라크섬과 케슘섬 사이를 지나는 구간으로 지난달 3월 13일 개설됐다. 이는 해협 봉쇄 이후 서유럽 관련 선박이 통과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같은 날 일본 미쓰이와 관련된 파나마 선적 '소하르 LNG호'가 해협을 지났으며 4일에는 인도 계열사가 보유한 인도 선적 '그린산비호' 역시 통과를 완료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정부의 외교적 교섭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정부는 이번 사례들이 각국 정부의 공식적인 개입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 관계자는 5일 "선적국과 선사국 그리고 화주국과 용선국 등 국가별 선박마다 처한 조건이 모두 다르다"며 일본 관련 선박 역시 일본 정부의 관여 없이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신문 역시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해협을 통과한 소하르 LNG호는 일본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으며 정부가 통과를 위한 협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통과한 일본 관련 선박들의 서류상 선적국은 파나마나 인도로 확인됐다. 프랑스 선박 또한 정부 차원의 교섭이 아닌 개별 선사가 이란의 통항 규정을 수용해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정부는 선박 통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 측과 물밑 접촉을 지속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직접 교섭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과 공식 협상에 나설 경우 이란 측이 과도한 통행료를 요구하거나 외교적인 지지 표명을 강요하는 등 협상력을 키워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같은 비적대국은 사전 조율을 통해 통행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면서도 미국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은 제한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이 모든 국가에 개방된 국제적 공역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이란과의 개별 협의보다는 다자간 협의를 통한 해법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일 영국이 주도한 화상회의와 지난달 프랑스 주도의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호르무즈 해협 내 안전한 해상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천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선사의 입장 또한 중시하고 있다"며 "국제 규범에 따라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과 안전 보장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관련국들과 협력 중"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