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식탁이 달라진다. 올해는 유독 그 변화가 빠르고 뜨겁다.

봄동 비빔밥을 시작으로 알주꾸미까지, 제철 먹거리가 2030세대의 SNS를 점령하며 단순한 미식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에 '제철코어(seasonal core)'라는 이름을 붙였다.
봄동 비빔밥에서 시작된 불씨
올 초 SNS를 달군 건 소박한 채소였다. 방송인 강호동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봄동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숏폼 콘텐츠로 재편집·확산되면서, '봄동 비빔밥' 관련 언급량은 전년 대비 888% 증가했고, 일부 마트 매출도 37% 이상 늘었다.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고, 초록빛 봄동과 고추장·참기름의 배색이 '인증샷'에 최적화됐다는 점이 바이럴을 가속했다.
수요가 몰리자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서울 가락시장에서 봄동 15㎏ 한 상자(상품) 도매가격은 한 달 사이 약 33.6% 올랐으며,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생산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수요가 갑자기 늘면서 가격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완제품 가격의 오름폭은 더 가팔랐다. 한국물가정보 조사에 따르면 봄동 비빔밥 한 그릇 가격은 기존 8000원에서 1만 2000원으로 약 50% 인상됐다.
식품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상의 김치 브랜드 종가는 시즌 한정 제품인 '봄동 겉절이'를 선보였고, 이 제품은 출시 약 두 달 만에 판매량 2만 개, 중량 기준 약 22톤(t)을 돌파했다.
이번엔 알주꾸미…'주쫀쿠'가 몰려온다
봄동 열풍이 잦아들기 무섭게 다음 주자가 등장했다. 바로 알배기 주꾸미, 이른바 '알주꾸미'다. SNS에서는 '주쫀쿠(쭈쫀쿠)'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빠르게 확산 중이다. 밥알처럼 생긴 알을 주꾸미 머리가 감싼 모양이 지난 시즌을 강타했던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와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유행했던 두쫀쿠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어른들의 쭈쫀쿠'라는 표현도 인스타그램에서 퍼지고 있다.
주꾸미는 봄 산란기를 앞두고 몸에 영양을 집중적으로 축적하는데, 이 시기에 살이 통통해지고 식감도 훨씬 쫄깃해진다. 특히 암컷은 알이 차오르면서 고소한 풍미까지 더해진다. 제철 특유의 맛이 SNS 콘텐츠로 재조명되면서 '지금만 먹을 수 있는 한정판'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제철코어'의 탄생: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산다
이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제철코어'다. 제철코어는 특정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먹거리·장소·콘텐츠·이벤트를 소비하는 방식을 말한다. MZ세대에게 제철은 단순한 시기가 아니라 '지금 아니면 놓칠 수 있는 희소한 경험'으로, 언제든 살 수 있는 것보다 이때만 가능한 감정과 기억이 소비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이는 2030의 소비 방식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제품의 품질과 가성비를 따지기 이전에 희귀하거나 재미있는 콘셉트에 열광하고 기꺼이 주머니를 여는 특성이 있다. 제철 음식은 이 콘셉트 소비의 최적 무대다. 봄에만, 이 시기에만 나온다는 '자연이 만든 한정판'이기 때문이다.
손실 회피 심리도 작동한다. 지금 먹지 않으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압박이 소비를 촉진한다. 여기에 SNS 인증 문화가 더해지면서, 제철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먹는 경험뿐 아니라 '먹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는 것까지가 소비의 완성인 셈이다.
SNS 바이럴이 시장을 뒤흔드는 구조
이 현상의 핵심 동력은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SNS 바이럴이다. SNS와 유튜브를 통해 특정 음식이 소개되면, 곧바로 방문 인증과 후기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수요가 급격히 쏠린다. 문제는 유행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식재료 수급과 가격 시장에 혼란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팀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특정 음식의 확산은 단기간 수요 집중을 유발해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철 음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유행했던 두바이쫀득쿠키의 경우 주재료인 카다이프 가격이 68.3% 급등했고, 탕후루 역시 딸기 가격이 50% 오르는 등 SNS를 통해 특정 음식이 주목받으면 관련 재료와 완제품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는 '동조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음식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제철코어의 파장은 식품 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봄동 열풍은 패션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LF는 주요 브랜드에서 봄·여름 시즌 라이트 그린, 민트, 라이트 옐로 그린 등 그린 계열 상품 비중을 확대했으며, LF몰에 따르면 올해 들어 '그린' 키워드 검색량은 전년 대비 약 55%, '민트' 검색량은 50% 증가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서는 계절 과일을 모티프로 한 의류 거래액이 전년 대비 200% 이상 늘기도 했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으로, 제철 감각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마라'나 '로제'처럼 계절을 타지 않는 음식들이 유행했다면, 요즘은 특정한 시즌에만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 더 큰 관심을 받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계절성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정체성이 됐다는 의미다.
봄이 지나면 또 다른 제철이 온다. 여름 민어와 가을 전어, 겨울 굴이 이미 SNS에서 대기 중이다. 제철코어는 계절이 바뀌는 한 멈추지 않을 트렌드다. 다만 그 열기가 식재료 수급과 가격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소비자와 산업 모두 보다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