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반전으로 접어든 중동전쟁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인 열쇠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이 부각되고 있다.
3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 해협은 이란의 최후 억지 수단이자 미국의 정치 및 경제적 급소로 자리 잡으며 전쟁의 핵심 결전지가 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해협의 통제권을 둘러싸고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란은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및 가스 수송선에 통행료를 부과하기 위한 법제화에 착수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협 개방을 휴전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6일까지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이란의 에너지 시설을 포함한 주요 인프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것이 체제 생존을 위한 마지막 억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중동 전문가 발리 나스르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정권에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핵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핵 프로그램이 상징적인 의미에 그쳐 실질적인 억지력을 제공하지 못한 것과 달리, 현재 이란이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해협 통제권과 그에 따른 수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해협의 물류는 한 달 넘게 마비된 상태다. 평소 하루 100여 척에 달하던 통과 선박은 수십 척으로 급감했으며 페르시아만 내부에 수많은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발이 묶여 있다.
이란은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해 우호국과 비우호국을 양분해 차별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며 구체적인 통행료 징수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유조선에 대해 배럴당 약 1달러를 위안화나 스테이블코인으로 받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보통 200만 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원유운반선이 통과할 경우 1회당 200만 달러(약 30억 원)의 통행료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한 이란의 행보는 미국의 경제적 급소를 정밀 타격하는 위협으로 간주된다. 해협 봉쇄 이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선을 돌파하며 급등했으며, 이는 미국 내 물가와 휘발유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불안을 주고 있다.
전쟁의 향방은 이란의 해협 통제가 언제까지 지속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의 에브라힘 아지지 위원장은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리겠지만 이란의 새로운 규칙을 따르는 국가들에만 통과가 허용될 것"이라며 종전 후에도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군사 옵션을 시사하는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 주도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등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는 해협 재개방을 위한 군사 작전 시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그리고 고속정 공격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군사 작전 구상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3주간 공세를 강화해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나 이란이 이에 굴복할지는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해협을 장악한 상태로 전쟁이 마무리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안보에 장기적인 불안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의 하산 알하산 연구원은 "이란이 원하는 시점에 특정 국가를 겨냥한 사실상의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며 세계 해상 물류가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구조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송유관을 이용해 홍해나 오만만으로 원유를 우회 수출하는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전체 물량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국제법적 측면에서도 논란은 이어진다. 호르무즈 해협은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통행을 제한할 수 있는 인공 수로가 아니라 자연 해협이기에 이란의 통제 행위는 해적 행위로 간주될 소지가 크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해운업계가 통행료를 지급하는 것은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 실질적인 수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 여부가 전 세계 에너지 수급과 국제 질서의 안정성을 결정짓는 최대의 변수가 됐다. 미국이 이 문제를 방치하고 철수한다면 에너지 수급을 넘어 국제 질서 전반에 상당한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