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F리테일과 하나은행, 한국은행이 전국 1만 8,800여 개 CU 점포를 거점으로 예금 토큰 실증 사업에 본격 돌입하며 현금과 신용카드를 넘어선 차세대 디지털 금융 플랫폼 구축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 2일 BGF리테일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하나은행, 한국은행과 함께 예금 토큰 실증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추진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맺었다. 협약식에는 홍정국 BGF리테일 부회장, 민승배 대표를 포함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호성 하나은행장 등 민관 금융·유통 수뇌부가 집결해 디지털 화폐 생태계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자산인 예금 토큰(은행 예금을 디지털 증표로 변환해 화폐처럼 사용하는 자산)은 기존 가상자산과 달리 시중은행의 실물 예금을 근거로 발행되어 가치 변동의 위험이 없고 제도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편의점이라는 현장에 주목한 배경에는 기존 금융 결제망의 고질적인 비효율이 자리 잡고 있다. 신용카드나 계좌이체를 통한 현재의 결제 방식은 소비자 눈에는 순식간에 끝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카드사, 은행, 밴(VAN)사 등 여러 중개 기관을 거치며 대금 정산에 수일이 걸리는 지연 구조를 갖고 있다. 예금 토큰은 분산 원장 기술(데이터를 여러 곳에 나누어 저장해 위변조를 막는 기술)을 활용해 물건을 사는 즉시 금융기관 간 정산까지 한 번에 끝나는 실시간 결제 체계를 지향한다. 중간 단계가 사라짐에 따라 가맹점은 판매 대금을 즉각 회수해 자금 운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시스템 전체적으로는 막대한 금융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낸다.
이번 실증 사업의 또 다른 승부처는 정부 보조금과 바우처(특정 용도로만 쓸 수 있는 이용권)의 디지털 집행 역량이다. 예금 토큰은 돈에 특정 논리를 심을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 머니(조건부 결제가 가능한 지능형 화폐)의 성격을 띤다. 정부가 복지 보조금을 예금 토큰으로 지급하면 사용처를 CU 편의점 내 특정 품목으로만 한정하거나 지원 취지에 어긋나는 상품의 결제를 원천 차단하는 정교한 행정이 가능해진다. 이는 종이 바우처나 별도 카드를 발급할 때 발생하는 행정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국가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도구가 된다.
유통 현장에서 기대하는 시너지 역시 화폐의 지능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금 토큰 결제 시스템이 구축되면 소비자가 주류나 담배를 고를 때 토큰에 담긴 신원 정보와 대조해 별도의 신분증 확인 없이도 결제 단계에서 자동 성인 인증이 이뤄진다. 특정 시간대에만 반값 할인을 적용하거나 특정 지역 소비자에게만 추가 혜택을 주는 프로모션도 POS(판매 시점 관리 시스템)의 복잡한 조작 없이 토큰 자체 설정만으로 실시간 구현된다. 유통사는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는 별도의 쿠폰을 챙길 필요 없이 최적의 할인을 자동으로 받는 선순환 체계가 마련되는 셈이다.

소비자가 체감할 변화의 핵심은 금융의 경계가 사라지는 편의성과 경제성이다. 예금 토큰은 시중의 간편결제 서비스처럼 미리 돈을 충전하거나 환전할 필요 없이 본인의 은행 예금을 그대로 디지털화해 사용한다. 잔액이 모자라면 연결된 계좌에서 즉각 토큰이 생성되는 자동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 결제 흐름이 끊기는 불편함을 없앴다. 하나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은 기존 하나원큐 앱을 그대로 활용해 전국 CU 매장에서 QR 코드나 바코드 스캔만으로 구매를 마칠 수 있다. 여기에 지문이나 얼굴을 통한 생체 인증 기술이 더해져 스마트폰이나 카드를 직접 조작하지 않고도 강력한 보안 속에서 원터치 결제가 가능해진다.
이번 사업은 민간이 주도하는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자산에 가치가 고정된 가상자산)의 확산에 대응해 통화 주권을 수호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발행 주체가 불분명한 민간 디지털 자산이 결제 시장을 장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금융 불안정성을 차단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시중은행의 예금 토큰이 조화를 이루는 이층 구조(Two-tier) 모델을 세계 최초 수준으로 실증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금융의 안정성을 담보하면서도 블록체인이라는 혁신 기술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BGF리테일은 이번 실증 사업을 기점으로 CU를 단순한 물건 매매의 장소를 넘어 일상 속 디지털 금융의 최첨단 접점으로 재정의할 계획이다. 홍정국 BGF리테일 부회장은 생활 밀착형 채널인 편의점이 새로운 결제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점포 네트워크를 활용해 금융과 유통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프로젝트 한강 2단계는 오는 2026년 상반기 중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스트를 거쳐 시스템의 안정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최종 점검한 뒤 상용화 단계로 접어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