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2개월 앞두고 민주당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

2026-04-02 08:25

민주당, 김관영 전북지사 제명

김관영 전북도지사. / 뉴스1
김관영 전북도지사. / 뉴스1
6·3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현직 광역단체장이 금품 제공 혐의로 당에서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청년들에게 현금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영 전북도지사를 1일 밤 전격 제명했다. 재선 도전에 나섰던 김 지사의 민주당 전북지사 경선 후보 자격도 즉각 박탈됐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9시부터 40여 분간 국회에서 비공개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에게 "금품 제공 정황이 파악돼 김 지사에 대해 최고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제명을 의결했다"며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는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3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식당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지사는 민주당 도당 청년위원과 시의원 출마 예정자 등 15명가량과 저녁 식사 겸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가 수행원에게 검은색 배낭을 가져오게 한 뒤 봉투에서 5만원권 현금을 꺼내 참석자들에게 거주 지역에 따라 2만~10만원씩 차등 지급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금을 건네는 장면을 가리려는 듯 한 청년이 일회용 앞치마를 흔드는 모습도 영상에 포착됐다.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 의혹이 담긴 고발장을 전날 접수하고 고발인 소환 조사에 나서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전북선관위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김 지사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공직선거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선거구민에게 기부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 / 뉴스1
김관영 전북도지사. / 뉴스1

CCTV 영상이 이날 언론에 공개되자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오전 9시께 당 윤리감찰단에 김 지사에 대한 긴급 감찰을 즉각 지시했다. 정 대표의 감찰 지시로부터 약 12시간 만에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이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다.

김 지사는 이날 오전 전북도청에서 기자들을 만나 "지난해 11월 말 도내 청년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술이 어느 정도 된 상태에서 대리기사비 명목으로 총 68만원을 건넨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일부 참석자의 요청에 차 안 비상금 봉투에서 현금을 꺼내 나눠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급 직후 부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곧바로 회수 지시를 내렸고 이튿날 전액을 돌려받았다"며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사안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CCTV 영상과 관련해 김 지사 측은 식당 주인이 특정 조건을 요구하며 접근해 왔지만 전액을 이미 회수한 상황이라 단호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반면 식당 주인 측은 오히려 김 지사 측 관계자가 월 2000만원 규모의 매출을 보장해 주겠다며 회유를 시도했다고 맞섰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CCTV 영상 공개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에게 "윤리감찰단이 김 지사로부터 서면 답변을 받은 결과 금품 제공 혐의를 부인하지 못했다"며 "명백한 불법 상황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고위원들이 일치된 의견으로 제명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제공된 금품 규모에 대해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며, 파악한 결과로는 68만원보다 액수가 크다"고 했다. 또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금품을 살포한 명백한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 사무총장은 이번 신속한 제명 결정의 배경에 대해 "현직 광역단체장의 금품 살포 행위가 CCTV에 녹화되고 국민에게 보도되는 상황을 미온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며 "현직 단체장이든 경선 과정에 있는 자든 도덕적 긴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당은 조치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발 빠른 결정은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불거진 '돈봉투' 악재가 전체 선거판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를 부정부패가 없는 '역대급 깨끗한 공천'으로 치러야 한다고 연일 강조해 온 만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의 선전이 전망되는 상황에서 더욱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제명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김 지사가 빠지면서 민주당 전북지사 경선 구도는 큰 폭으로 재편됐다. 당초 경선은 김 지사와 안호영·이원택 의원 간 3파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안 의원은 김 지사와 정책 연대를 선언하며 경선에서 사실상 물러날 기류였으나 이날 입장을 번복해 완주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경선은 이원택·안호영 의원의 양자 대결 구도로 압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 사무총장은 "오는 4일 나머지 두 명이 후보 등록을 마치면 경선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전북 군산에서 19대 국회의원을 민주당 소속으로 지냈고, 20대 때는 국민의당 소속으로 재선했다. 이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후보의 '당내 대사면 및 대통합' 방침에 따라 민주당에 복당했다.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선거운동을 도운 뒤 그해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에 당선됐다. 이번 제명으로 김 지사는 4년여 만에 다시 민주당 당적을 잃게 됐다.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할지 관심이 쏠린다.

조국혁신당은 논평을 내고 김 지사 의혹에 대해 "공직선거법을 어긴 당이 다시 후보를 내겠다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며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 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