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다른 행성인 줄…유네스코가 인정한 한국의 '하얀 계곡'

2026-04-01 15:42

흰 바위와 포트홀 지형이 펼쳐진 계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 청송 백석탄계곡

계절의 변화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길목에는 오래된 시간이 스며든 풍경이 있다. 경상북도 청송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백석탄계곡이다. 맑은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하얀 바위들은 차분하고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의 대표 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연이 오랜 시간 빚어낸 지형의 특징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백석탄계곡 / 청송군청-청송여행 홈페이지
백석탄계곡 / 청송군청-청송여행 홈페이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번갈아 들려와, 걷는 동안 마음까지 한결 느긋해진다. 발 아래를 스치는 맑은 물과 바위 사이를 채운 서늘한 공기는 계곡 특유의 고요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백석탄계곡 / 청송군청-청송여행 홈페이지
백석탄계곡 / 청송군청-청송여행 홈페이지

백석탄이라는 이름은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개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름 그대로 맑은 하천을 따라 펼쳐진 흰 암석들이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바위들이 유독 하얀 빛을 띠는 이유는 암석을 이루는 성분에 있다. 석영이나 장석 같은 흰색 광물 입자를 다량 포함한 퇴적암(사암) 지형이기 때문이다. 수천만 년 전 자갈과 모래, 진흙이 차곡차곡 쌓여 굳어진 이 바위들은 오랜 세월 물살에 깎이고 다듬어지며 지금의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 계곡의 지질학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는 포트홀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이다. 하천의 흐름을 따라 바위 위로 흐르던 물이 소용돌이치며, 그 속의 자갈이나 모래가 암반을 항아리 모양으로 파낸 흔적이다.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다듬은 듯 깊고 오목한 구멍들이 바위 곳곳에 형성돼 있다. 백석탄에서는 하부의 커다란 역암층에서 시작해 상부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퇴적 구조를 볼 수 있으며, 인근 신성계곡을 따라 사층리나 이암편 등 다양한 지질 구조가 관찰되어 아이들과 함께 찾기에도 좋다.

백석탄포트홀 (백석탄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
백석탄포트홀 (백석탄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

백석탄계곡을 포함한 신성계곡 일대는 12km에 이르는 녹색길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4월이면 길목마다 연분홍 진달래와 산벚꽃이 피어나 하얀 바위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봄의 정취를 더한다. 굽이치는 물줄기를 따라 조성된 길을 걷다 보면 지질학적 경이로움을 넘어 한 폭의 수묵화 속을 유람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백석탄을 품고 있는 신성계곡은 예부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조선 인조 때 김한룡이 고와 마을을 개척하며 시냇물이 맑고 아름다워 ‘고계’라고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했던 두곡 고응척 선생이 이곳의 풍경에 반해, 높게 누워 경치를 구경한다는 의미로 ‘고와(高臥)’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계곡 한쪽에는 옛사람들이 낚시를 즐기던 조어대와 뛰어난 경관을 지닌 가사연이라는 깊은 웅덩이가 남아 있어 옛 정취를 더한다.

백석탄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
백석탄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

온라인 후기를 살펴보면 백석탄계곡의 매력은 고요한 평온함에 있다는 반응이 많다. 방문객들은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이색적인 풍경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하얀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세상 시름이 잊히는 기분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장소로 꼽힌다. 현재에도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상시 개방돼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탐방할 수 있다.

청송 여행에서 백석탄계곡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근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진 방호정이 자리하고 있어 신성계곡의 정취를 한층 깊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청송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특산물인 사과는 맑은 공기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당도가 높고 육질이 아삭해 전국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사과를 활용한 다양한 디저트나 요리들도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백석탄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
백석탄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

더불어 청송의 향토 음식으로는 달기약수나 신촌약수를 이용한 닭백숙이 유명하다. 탄산 성분이 함유된 약수로 고아 낸 백숙은 육질이 연하고 잡내 없이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산채비빔밥과 함께 곁들이면 건강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특히 봄철에는 갓 돋아난 나물의 향긋함이 입맛을 돋우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백석탄계곡은 지구의 시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물길이 닿는 곳마다 새겨진 포트홀의 곡선은 자연이 긴 시간 동안 빚어낸 결과물이다.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연의 호흡을 느끼고 싶다면, 하얀 돌이 반짝이는 이곳으로 발길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백석탄계곡 / 구글 지도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