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만 아셨나요?…살아있는 세계유산, 두 가문이 지킨 '600년 집성촌'

2026-04-01 14:21

집성촌의 전통이 살아있는 세계유산, 경주 양동마을

경주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면 설창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마을을 감싸안은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현대와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산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과 초가집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그 품 안에서 수백 년의 세월을 지켜왔다.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고즈넉한 골목 사이로 스미는 바람과 처마 끝에 내려앉은 햇살은 양동마을이 지닌 오랜 시간의 깊이를 묵직하게 전한다. 이곳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지금도 후손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마을의 역사는 15세기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서로 협력하며 600년 가까이 집성촌을 이뤄왔다. 풍수지리적으로 ‘물(勿)’ 자 모양을 띠는 마을 지형은 상류층의 기와집이 높은 곳에, 하층민의 초가집이 낮은 곳에 자리하는 독특한 경관을 형성했다.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배치된 가옥들은 유교적 예법과 신분 질서를 보여주면서도 주변 산세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건축적 미학과 보존 상태 덕분에 1992년에는 당시 영국의 찰스 황태자(현 찰스 3세 국왕)도 이곳을 찾아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살피며 감탄을 표한 바 있다.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마을 곳곳에는 보물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가유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종가인 서백당은 하루에 세 명의 현인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건축적 조형미가 뛰어나다. 서백당 마당에 서 있는 오래된 향나무는 가문의 기개를 상징하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물인 무첨당은 여강 이씨 가문의 종가 별채로, 조선 중기 선비들의 단아한 풍류와 절제미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보물로 지정된 향단과 관가정을 비롯해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택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관람객들은 조선시대 가옥 구조의 변화와 특징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 다만 이곳은 주민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 터전인 만큼, 가옥 내부를 둘러보려면 주민의 양해를 먼저 구해야 하며 관람 시에도 정숙을 유지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양동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민속촌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생활감과 진정성을 이곳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흙길을 걸으며 만나는 낮은 돌담과 장독대, 철마다 피어나는 야생화에서는 한국적인 서정이 묻어난다. 특히 안동 하회마을이 평탄한 지형에 조성된 것과 달리, 양동마을은 지형의 굴곡이 있어 높은 곳에 올라 마을 전체를 조망할 때 입체적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어, 사전에 마을 배치도와 추천 답사 코스를 확인하고 방문하면 훨씬 풍성한 관람이 가능하다.

마을 투어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향토 먹거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양동마을의 특산물로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만드는 양동 엿과 유과가 유명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쌀과 엿기름만으로 고아 낸 조청을 사용해 만드는 엿은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한 단맛과 치아에 붙지 않는 깔끔한 식감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마을 안 식당에서 맛보는 시골 밥상은 직접 재배한 채소와 정갈한 밑반찬으로 구성돼 고향의 맛을 선사한다. 특히 가마솥에서 푹 끓여낸 시래기국밥은 소박하지만 깊은 풍미를 지니고 있어 여행의 허기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인근에서는 경주 지역의 대표 먹거리인 쌈밥과 황남빵을 맛볼 수 있으며,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산채비빔밥은 건강한 맛을 찾는 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경주 양동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양동마을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두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이 있다. 마을과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곳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양동마을과 연계해 방문하기 좋은 코스다. 서원 앞을 흐르는 자계천의 거대한 너럭바위인 ‘세심대’와 시원한 물줄기는 과거 선비들이 학문을 닦으며 마음을 정화하던 풍경을 짐작하게 한다. 이 외에도 경주 시내 방향으로 이동하며 만나는 대릉원, 첨성대 등 주요 명소들은 과거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와 조선의 유교 문화가 공존하는 경주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양동마을 송첨종택 / ⓒ한국관광콘텐츠랩
양동마을 송첨종택 / ⓒ한국관광콘텐츠랩

양동마을의 관람 시간은 계절별로 운영된다. 하절기인 4월부터 9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매표 마감은 오후 6시다. 동절기인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매표는 오후 5시에 마감한다. 관람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및 군인 2000원, 어린이 1500원이다. 인근 지역인 포항, 영덕, 울진, 울릉 주민은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지참하면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마을 입구에 마련된 양동마을문화관에 들러 마을의 역사와 구조를 미리 살펴본 뒤 답사를 시작하면, 수백 년을 이어온 마을의 진정한 가치를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 양동마을 / 구글 지도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