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이 인정한 '아름다운 한국 사찰'…매년 100만 명이 찾는 절벽 위 '일출 성지'

2026-03-31 12:20

수평선 끝 절벽에서 마주하는 남해의 해오름
CNN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여수 향일암

여수반도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섬의 가장 남쪽 끝으로 향하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절벽 위에 한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꼽히는 향일암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품고 수평선 너머의 붉은 기운을 기다린다.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수면 위에 점처럼 떠 있는 고깃배들이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이곳의 첫인상이다.

여수 향일암 / 연합뉴스
여수 향일암 / 연합뉴스

향일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금오암으로 불리다가 조선 숙종 41년인 1715년에 인묵대사가 현재의 이름을 붙였다. '해를 향하는 암자'라는 이름 그대로 남해의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워낙 빼어나 붙여진 명칭이다. 이러한 지형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CNN은 향일암을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곳은 종교적인 장소를 떠나 남해안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향일암 일출 / ⓒ한국관광콘텐츠랩
향일암 일출 / ⓒ한국관광콘텐츠랩

사찰에 오르는 길은 경사가 꽤 가파른 편이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돌계단은 40도에 육박하는 경사를 이루고 있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게 된다. 길을 오르다 보면 머리 위로 울창한 나뭇잎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전한다. 적당히 땀이 맺힐 무렵 거대한 바위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향일암의 명물인 석문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야 하는데,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아 저절로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는 사찰에 들어서기 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배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좁은 바위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을 길잡이 삼아 걸음을 옮기다 보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묘한 평온함이 찾아온다.

이 석문을 지나면 비로소 금오산의 기암괴석과 남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향일암은 지형적으로도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사찰 주변의 바위들이 거북의 등껍질 모양처럼 갈라져 있어 영구암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바위의 무늬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북의 형상을 닮은 부분이 많아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남해안에서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지점으로도 유명하다. 아침에는 바다를 뚫고 솟는 해를, 저녁에는 기암절벽 너머로 차분하게 저무는 해를 감상할 수 있어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방문해도 각기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향일암 / ⓒ한국관광콘텐츠랩
향일암 / ⓒ한국관광콘텐츠랩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향일암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병들의 근거지 역할을 수행했다. 가파른 수직 절벽 위에 세워진 사찰은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던 이들의 숨결이 사찰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지난 2009년 12월 갑작스러운 화재로 대웅전을 포함한 주요 건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2012년 원통보전과 종각 등을 성공적으로 복원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복원된 건물들은 기존의 기암절벽, 울창한 동백나무 숲과 조화를 이루며 사찰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향일암 여행의 묘미는 내려오는 길에 맛보는 지역 향토음식에서도 이어진다. 사찰 입구에 늘어선 가게들에서는 여수의 대표 특산물인 돌산 갓김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돌산도의 비옥한 토양과 해풍을 맞고 자란 갓은 특유의 알싸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특히 갓 지은 밥에 갓김치 한 점을 얹어 먹는 맛은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강렬하다. 또한 여수의 신선한 해산물을 활용한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서대회무침 등은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제철을 맞은 해산물 요리는 여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며,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들은 향일암 방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향일암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향일암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인근에는 야경으로 유명한 돌산공원과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여수 해상케이블카가 있어 연계하여 방문하기 좋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나며 내려다보는 여수의 전경은 사찰에서 본 풍경과는 또 다른 해방감을 준다. 검은 모래가 이색적인 만성리 해변이나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트랜드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여행 동선을 짜기에 수월하다. 현재 향일암의 입장료는 무료이며, 누구나 제한 없이 사찰을 방문할 수 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인 만큼 주말이나 해맞이 철에는 이른 새벽부터 붐비는 편이다. 2026년의 따뜻한 봄날, 남해의 푸른 물결과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여수 향일암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향일암 / 구글 지도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