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무려 14조5806억원어치 주식을 태우는 이유

2026-03-31 10:07

보통주·우선주 총 8696만 주 소각… 발행주식 총수 약 1.2% 감소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뉴스1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뉴스1

삼성전자가 약 14조5806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31일 공시했다. 지난해 이사회 결의에 따라 취득한 자기주식을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시장에서 영구히 없애는 조치다.

삼성전자는 보통주 7335만9314주, 종류주(우선주) 1360만3461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1주당 액면가는 100원이며, 소각 예정 금액은 약 14조5806억원이다. 소각 예정일은 다음 달 2일이다.

이번 소각 대상은 지난해 2월 18일과 7월 8일 두 차례의 이사회 결의를 통해 취득한 자기주식 전량이다. 삼성전자는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취득한 자기주식을 이사회 결의로 소각하는 것으로, 주식 수만 줄고 자본금의 감소는 없다"고 설명했다.

주식 소각이란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영구적으로 소멸시키는 행위다.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총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배당과 달리 현금이 주주에게 직접 지급되진 않지만, 남은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전체 주식이 100주인 회사에서 10주를 소각하면 나머지 90주 보유자는 동일한 회사 자산에 대해 더 높은 지분율을 갖게 된다. 자본금 자체는 줄지 않으며,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배당 확대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유연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잉여 현금을 활용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최근 들어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이번 소각은 삼성전자가 상반기 중 추진하기로 예고한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의 일환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자사주 1억543만주 중 약 8700만주를 올해 상반기 안에 소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보유 자사주의 80% 이상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이날 공시된 약 8696만주가 사실상 그 전량에 해당한다. 소각이 완료되면 삼성전자의 총 발행주식 수는 보통주 기준 약 59억1964만주에서 약 58억4628만주로 줄어들게 된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 11월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 뒤, 이듬해 2월 1차 매입분 약 3조원어치를 전량 소각했다. 이번에 공시된 물량은 그에 이은 2차 소각에 해당한다. 2024년 발표 이후 이어진 일련의 소각 조치로 삼성전자는 수십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걷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대규모 소각 결정에는 상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배경도 작용했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를 원칙적인 소각 대상으로 규정하며, 신규 취득분은 1년 이내, 기존 보유분은 법 시행 후 1년 6개월 이내에 소각하도록 명시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장기간 금고에 쌓아두는 관행이 일반적이었다. 자사주를 대량 보유한 상태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나 경영권 유지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자사주를 주주 이익 환원에 실질적으로 쓰도록 강제하는 취지에서 나왔다. 삼성전자는 법적 강제가 완전히 발효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주주환원 강화라는 명분도 함께 챙긴 셈이다.

재계 전반으로도 자사주 소각 흐름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보유 자사주 1798만주 중 임직원 보상용을 제외한 1469만주, 약 5조1575억원 규모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20%에 달하는 물량으로 지주사 역대 최대 규모다. ㈜SK의 자사주 비율은 소각 완료 후 기존 24.6%에서 사실상 0% 수준으로 떨어진다. KCC는 발행주식의 13.2%인 117만주를, 롯데지주는 524만주를, SK네트웍스도 발행주식 총수의 9.4%에 해당하는 2071만주를 각각 소각 대상에 올렸다. 삼성전자와 SK 두 곳만 합산해도 소각 규모가 21조원에 달하며, 여기에 중견 대기업들의 소각 물량까지 더하면 상법 개정 이후 재계 전체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이미 수십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주주환원 강화와 함께 사업 경쟁력 확보에도 동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R&D) 분야에 역대 최대인 37조7000억원을 투입했고, 시설투자(CAPEX)에도 52조7000억원을 집행했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초로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양산에 성공하며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탈환에 나서고 있다. 임직원 평균 연봉도 업황 회복에 힘입어 1억5800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