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대해 30억 원 안팎의 돈을 받겠다는 구상이 나오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이 더 커지고 있다.

비적대국 선박만 통과 허용…이란, 통행료 부과 방침 잇따라 강조
26일 연합뉴스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인도 영어 TV 뉴스채널 인디아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에 부과된 전쟁 상황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위한 일련의 조치가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침략 행위와 무관한 다른 국가들은 안전하고 확실한 통행을 보장받기 위해 이란 당국과 필요한 조율을 거친 뒤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들에 협조하는 동맹국 선박은 배제하고 중국과 인도 등 이란이 비적대적 국가로 분류하는 나라 선박에 대해서는 조건부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단순한 통항 허용을 넘어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외교적 카드이자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르고 있다.
이란 측 메시지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란 국영 영어·프랑스어 매체 프레스TV는 지난 25일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영유권 인정과 함께 수주간 이어진 전쟁에 따른 손해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원한다는 정부 입장을 전했다.
앞서 이란 외무부는 지난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비적대적 선박은 이란 당국과 조율을 거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고 이 문서는 지난 24일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해사기구 IMO 회원국 176개국에도 회람된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 한 척당 30억 원 안팎…3200척 묶이면 10조 원 계산도
실제 입법 움직임도 포착됐다. 반관영 이란학생뉴스통신 ISNA에 따르면 지난 21일 이란 의회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마련돼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에드 라흐마트자데 의원은 해당 조치가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의 통행료 부과와 마찬가지로 주권적 권리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금액이다. 중동 뉴스와 에너지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실제로 통과돼 시행될 경우 이란이 받으려는 선박 1회당 통행료는 약 2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0억 원 안팎이다. 명목은 전쟁 비용 보전과 안보 유지 비용이지만 현실화할 경우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을 사실상 유료 통로처럼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재 걸프 해역에 발이 묶인 선박은 약 3200척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 계산으로도 이들 선박이 모두 통행료를 내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면 이란은 약 64억 달러, 우리 돈으로는 10조 원에 가까운 수입을 거둘 수 있게 된다.

국제법 논란 불가피…이란, 안보 서비스 대가 주장 가능성
다만 국제법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엔해양법협약 UNCLOS 제26조와 제44조에 따르면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는 모든 선박에 통과 통행권이 보장되며 영해 내에서도 단순 통과 자체를 이유로 통행료를 부과할 수는 없다. 외국 선박을 위해 제공한 특정 서비스의 대가로만 비용 청구가 가능하다는 게 협약 취지다. 이란은 이 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이란이 실제로 통행료 징수에 나설 경우 단순 통행료가 아니라 안보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라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국제사회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2019년에도 비슷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법안이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이란 압박에 맞서는 차원에서 이란 의회에 제출됐지만 결국 통과되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법안 추진이 실제 시행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이 통행료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점만으로도 국제 해운시장과 에너지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