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 귀한 식재료인데 사람들이 몰라서 못 먹는 나물

2026-03-23 11:03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나물... 인삼만큼 귀한 산나물

다른 식물들이 모두 잠든 한겨울, 홀로 눈을 헤치고 파릇파릇 얼굴을 내미는 나물이 있다. 냉이도 달래도 아직 기지개를 켜지 않은 1~2월, 눈 속에서 초록빛을 지키는 식물. 바로 전호(前胡)다. 대부분의 식물이 사라지는 10월경에 싹을 틔우고, 추운 한겨울에도 잎을 달고 버티다가 이른 봄 누구보다 먼저 새순을 내미는 이 기특한 나물은, 깊은 산속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로 통한다.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다른 식물들이 모두 잠든 한겨울에 홀로 눈을 헤치고 파릇파릇 얼굴을 내미는 나물이 있다. 냉이도 달래도 아직 기지개를 켜지 않은 1월이나 2월에 눈 속에서 초록빛을 지키는 식물. 바로 전호(前胡)다. 대부분의 식물이 사라지는 10월쯤에 싹을 틔우고 추운 한겨울에도 잎을 달고 버티다가 이른 봄 누구보다 먼저 새순을 내미는 이 기특한 나물은 깊은 산속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로 통한다. 때마침 지금이 체취 제철이다.

전호 /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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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는 미나리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안트리스쿠스 실베스트리스(Anthriscus sylvestris)다. 생약명은 '산아삼(山峨蔘)'. 영어권에서는 '카우 파슬리(Cow Parsley)'로 불리며, 일본에서는 '야마닌진(山人参)', 즉 산에서 자라는 인삼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국에서는 앤 여왕 시대의 섬세한 레이스를 닮은 꽃 모양 때문에 '레이디스 레이스(Lady's Lace)'라는 애칭도 얻었다. 유라시아 전역과 아프리카에 분포하며, 한국에선 전국 각지에서 야생한다. 특히 울릉도와 흑산도에서 대규모 군락을 이루며 번성하는 까닭에 이 지역 특산 나물로 이름이 높다.

잎이 당근이나 쑥갓과 비슷하고, 줄기는 보라색을 띠며 미나리처럼 생겼다. 높이는 1m 내외로 곧게 자라며, 2~3회 깃꼴겹잎 구조를 갖는다. 꽃은 5~6월 사이 흰색의 겹산형꽃차례로 피며, 열매는 녹색이 도는 검은색으로 윤기가 흐른다. 기름나물, 천궁, 사상자와 외형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약초로도 꼽힌다. 야생에서 채취할 때 특히 주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독미나리, 나도독미나리와 어린잎이 닮았고, 약한 독성을 지닌 자주괴불주머니 어린잎도 전호 주변에 자라기 때문에 섣불리 캐서는 안 된다.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향은 단연 전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참당귀와 미나리를 섞어놓은 듯하면서도, 지중해 허브 처빌의 뉘앙스까지 더해진 복합적인 향기가 난다. 호불호가 있는 향이지만, 입맛이 없을 때 한 번 먹으면 입맛이 확 돌아온다는 것이 이 나물을 즐기는 이들의 공통된 경험담이다. 울릉도에서는 인삼만큼 효능이 좋다고 믿을 만큼 귀하게 여기는 나물이다.

채취 적기는 3월 말부터 4월 초순이다. 너무 어린순은 약효가 덜한 까닭에 어느 정도 자란 것을 골라야 한다. 봄과 가을, 연간 두 차례 나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5~6월 꽃이 피고 결실을 맺은 뒤 지상부가 말라 없어졌다가, 가을쯤 뿌리에서 잎이 다시 올라오기 때문이다.

전호 부침개 / 쿠팡
전호 부침개 / 쿠팡

식재료로서 전호의 쓰임새는 넓다. 어린잎과 줄기는 매우 부드러워 나물무침의 재료가 되고, 생채나 샐러드, 쌈채소, 전, 장아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삶아 데치는 것보다 생채로 먹을 때 향이 더 진하게 살아난다. 나물무침을 할 때는 끓는 물에 천일염을 넣고 살짝 데친 뒤 곧바로 찬물에 헹궈 열기를 식히는 것이 핵심이다. 오래 데치면 식감과 향이 모두 떨어진다.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조선간장·깨소금·다진 마늘·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통깨를 뿌리면 완성이다. 식성에 따라 된장양념이나 초고추장으로 무쳐도 잘 어울린다.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면 데친 후 물에 20분 정도 담가 두면 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서양에서도 전호는 다양하게 소비된다. 숭숭 썬 생채를 샐러드나 페스토(pesto)로 쓰고, 수프나 스튜에 넣어 허브로 활용하기도 한다. 씨앗을 갈아 카레나 밥 위에 향신료처럼 뿌리기도 하고, 뿌리는 당근 대용으로 쓴다. 가녀린 꽃차례의 수수한 매력 덕에 결혼식 부케 소재로도 인기를 끌며, 영국 왕립원예협회(RHS)도 한 정원 박람회에서 울타리용 식물이나 정원 장식 소재로 전호를 극찬한 바 있다.

약재로서의 전호 역시 역사가 깊다. 동의보감에서는 "모든 기병(호흡기병)을 치료한다"고 기록했다. 한방에서 뿌리를 '아삼'이라는 약재로 쓴다. 맛이 달고 매우며 약간 따뜻한 성질에 독성과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약초로 알려져 있다. 칼슘·칼륨·비타민C·무기질 등이 다량 함유돼 기침이 심한 감기나 천식에 효능이 있고, 뼈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관 건강을 지키며 성인병 예방에도 이롭다고 전해진다. 소화작용과 피로 회복에도 효과가 있으며, 위장 기능을 도와 오장을 편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해준다고도 알려졌다. 약재는 건조한 뿌리를 하루 15~20g씩 달여 이용한다.

전호 골뱅이 무침. / 쿠팡
전호 골뱅이 무침. / 쿠팡

최근에는 내륙과 서해안 일부 섬의 임가·농가를 중심으로 전호나물을 소득 작목으로 재배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씨앗 발아율이 낮은 편이라 재배 난이도가 있지만 약간 습기가 있고 서늘하며 겨울에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상 섬 지역에 적합한 작물이다. 건나물이나 장아찌로 가공하기 어려운 특성 탓에 유통보다는 생물 그대로의 신선 소비에 집중하는 전략이 유리하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꿋꿋이 초록빛을 지켜온 전호나물.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추운 계절을 이겨낸 향기와 기품은 어떤 봄나물에도 뒤지지 않는다.

전호 / '텃밭친구' 유튜브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