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50년은 다시 못 나올 가수... 나훈아 60년 노래 인생,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2026-03-20 17:24

'노래하는 사람 나훈아' 발간

2025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24 나훈아 고마웠습니다 - 라스트 콘서트’를 찾은 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2025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24 나훈아 고마웠습니다 - 라스트 콘서트’를 찾은 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나훈아라는 이름은 단순한 가수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이자 수천만 명의 기억 속에 새겨진 감정의 지문이다. '고향역'을 들으며 눈물을 삼켰던 1970년대의 이농민도, '테스형!'에 무릎을 쳤던 2020년대의 중장년층도 결국 같은 이름 앞에서 멈춰 섰다. 나훈아란 가요계 거목의 이름이 어떻게 60여 년을 살아남았는지 언론인 겸 음악평론가 조성진이 마침내 그 답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한스미디어가 펴낸 '노래하는 사람 나훈아'는 나훈아의 음악 인생 전체를 한국 대중음악사의 흐름 속에 놓고 조망한 본격 평론집이다. 저자 조성진은 'STRAY KIDS: 영원히 멈추지 않을 그들의 서사', '아이유를 읽는 시간', '우리가 몰랐던 임영웅 이야기' 등을 통해 K-POP 아티스트들의 진면목을 발굴해온 필자다. 이번에는 1년여의 취재와 집필 끝에 트로트의 거장 나훈아를 정면으로 다뤘다.

한스미디어가 발간한 '노래하는 사람 나훈아'
한스미디어가 발간한 '노래하는 사람 나훈아'

조성진은 "나훈아는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시대의 감정을 대신 살아낸 사람"이라며,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곧 한국인이 지나온 삶의 결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책은 나훈아를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대한 고목과 같은 존재"로 규정한다. 그의 노래가 담아온 주제는 고향, 어머니, 사랑과 그리움, 남자의 삶, 인생이라는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격랑 속에서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밀려든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그가 먼저 노래했고, 사람들은 그 노래에 기대 살았다. '고향역'과 '머나먼 고향'이 타향살이의 아린 향수를 건드렸다면, '홍시'와 '어매'는 부모 세대의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이 책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나훈아가 단순한 해석자가 아닌 창작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싱어송라이터였으며, 특유의 꺾기 창법과 비브라토로 이후 트로트 가창 스타일의 기준 자체를 새로 썼다. 대규모 콘서트 기획과 무대 연출에서도 그는 선구자였다. 철저한 준비와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트로트 공연의 수준을 끌어올렸고, 수많은 매진 기록을 세우며 공연 문화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책의 핵심은 대표곡 분석에 있다. '고향역', '무시로', '영영',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잡초', '해변의 여인', '테스형!' 등 굵직한 명곡들이 각각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작곡가와 연주자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노랫말이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는지를 촘촘하게 짚는다. 음악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나훈아 음악의 제작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나훈아에 대한 음악 관계자들의 헌사를 보면 한국 대중음악계 혹은 대중음악사에서 나훈아란 뮤지션이 차지하는 위치를 실감할 수 있다.

작곡가이자 플라워 리더인 고성진은 "트로트 꺾기를 포함해 모든 창법을 정립한 트로트 창법의 진정한 시작점"이라고 평한다. 김기표 음악감독은 "노래 실력이 어나더 레벨일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자세와 작사 능력까지 모든 음악인이 본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한다. 임현기 음악감독은 “한국 가요의 근간을 만든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사 그 자체”라는 헌사를, 이상훈 드럼 연주자는 “딴따라로 불리던 대중가수를 아티스트 영역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음악가”라는 헌사를 나훈아에게 바친다. 더 나아가 편곡가 정경천은 “향후 50년 동안은 다시 나오지 못할 명가수”라는 찬사를 보낸다.

‘노래하는 사람 나훈아’는 팬덤을 위한 헌정집이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한 봉우리를 냉정하고 정밀하게 기록한 비평서다. 나훈아의 노래가 왜 지금도 살아있는지, 그 음악이 어떻게 한 시대의 감정을 문화적 텍스트로 남겼는지를 추적한다. 한 권을 덮고 나면 나훈아가 부른 오래된 노래 한 소절이 전혀 다른 무게로 들릴 것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