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준다... 이달부터 모든 주민에게 80만원씩 매년 지급하는 지역

2026-03-19 14:29

군 단위 첫 기본소득 실험 시작

5만원권 지폐 / 픽사베이
5만원권 지폐 / 픽사베이

기름값은 오르고 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지방 곳곳이 '소멸 위기'를 걱정하는 시대, 전북 무주군이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에 전례 없는 실험을 시작했다. 재산이 얼마인지, 일을 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무주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매년 8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군 단위 지방정부가 순수 자체 예산만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 무주군은 18일부터 '무주형 기본소득' 지급을 본격 시작했다. 무주군에 주소를 두고 실제 거주하는 모든 주민에게 1인당 반기별 40만원씩, 연간 총 80만원이 무주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된다. 소득이 얼마인지,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직업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묻지 않는다. 오직 무주에 사는 주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이 지급 조건의 전부다.

군은 오는 20일까지 무주사랑상품권 모바일형(자동 충전)과 카드형 두 가지 방식으로 지급을 마칠 계획이다. 카드형 상품권은 거주지 읍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직접 수령하면 된다. 군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6일까지 집중 신청 기간에 지급 대상자의 95%에 해당하는 2만 1725명이 신청을 완료했다. 상반기에만 총 86억 9000만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상품권 사용 기한은 20일부터 90일 이내다. 무주군 6개 읍면 소재 소상공인 점포와 전통시장 등 무주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하지 않은 금액은 9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멸된다. 지급된 돈이 군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계된 것으로, 주민 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부양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노린다.

이번 기본소득의 재원은 무주군이 2025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 사업인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선정돼 확보한 예산 184억원이다. 군은 이를 군비로 전액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군 단위 지방정부가 외부 지원 없이 순수 자체 예산만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전국 최초 사례다.

무주군은 기본소득 지급에 앞서 지난 수개월간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쳤다. 지난해 10월 기본소득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11월에는 전담 조직인 기본사회팀을 신설했다. 12월에는 부군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기본소득위원회를 구성해 지급 대상·방법·금액 등 세부 계획을 심의했다. 이어 주민 설문조사, 무주군의회 협의,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 등 각종 행정 절차도 차례로 마무리했다. 보건복지부와의 협의 과정에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경우 기본소득 지급액이 소득으로 인정되지 않아 기존 수급 자격이나 급여액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구소멸 위기 지역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무주군의 기본소득 사업을 직접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무주군이 군 예산으로 연 8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며 "열성 있는 지자체는 지원 대상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기본소득은 소득·자산·직업 유무 등 어떠한 조건도 묻지 않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기본소득 운동의 국제 권위 단체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는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자격 심사나 노동 의무 등 어떠한 조건 없이 정기 지급하는 일정 액수의 현금"으로 정의한다.

기본소득의 핵심 특성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보편성'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일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구분 없이 모든 구성원이 대상이다. 둘째는 '개별성'이다.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별로 지급된다. 셋째는 '무조건성'이다. 근로 여부나 소득 수준을 심사하지 않고 무조건 지급한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무조건성으로, 무조건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기본소득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 기본소득 연구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기존 복지 제도가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자산·소득 조사 등 복잡한 심사를 요구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배경에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있다. 기술 진보로 일자리가 양적·질적으로 감소하고 불안정해지는 한편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심화돼 이를 극복할 새로운 사회보장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핀란드에서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운용한 바 있고,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석유 수익을 재원으로 삼아 유사한 제도를 오래전부터 시행 중이다.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논의는 2000년대 초 진보 학자들이 유럽의 기본소득 운동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경기도가 2019년부터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원씩 연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며 실험적 사례를 만들어 왔다. 이 대통령은 2021년 대선 국면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