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이 도쿄돔에서 기적을 썼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호주를 7-2로 꺾고 17년 만에 8강 무대를 밟았다. 5점 차 이상, 2실점 이하라는 냉혹한 조건을 충족해야 했던 한국은 극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주장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날 타격과 수비 양면에서 팀을 이끌었다. 3회초 적시 2루타를 터트리며 3-0으로 달아나는 귀중한 추가점에 보탰고, 위기의 9회말에는 팀 전체를 구하는 호수비를 완성했다. 단 1점만 허용해도 실점률 규정에 따라 8강행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정후는 릭슨 윙그로브가 우중간 방향으로 날린 안타성 타구를 향해 몸을 날렸고, 슬라이딩 캐치로 아웃카운트를 추가했다. 사실상 한국의 마이애미행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9회초에도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됐다. 6-2로 앞선 상황에서 이정후의 유격수 방향 땅볼 타구가 병살타로 이어질 뻔했으나, 호주 유격수 제리드 데일이 2루 송구를 실책하면서 1사 1·3루가 됐다. 이후 안현민(kt wiz)의 희생플라이로 한국은 최소 조건인 7점을 채워 8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정후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양팔을 벌리며 환호하다가, 이내 주저앉아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이정후는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9회 타석에서도 행운이 따랐고, 수비에서도 우중간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쪽으로 공이 날아왔다"며 "행운이 열심히 도와주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9회말 수비 당시의 심경도 "공이 날아왔을 때부터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조명에 공이 잠시 들어갔지만 행운이 따라서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9회초에 7점째를 내고 9회말 수비에 들어갈 때가 제가 야구하면서 가장 몸이 많이 떨렸던 순간"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단은 어차피 7점을 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하며 팀 전체가 담담하게 목표에 집중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승리는 한국 팀의 모든 구성원 덕분이며, 팬들과 취재진까지 모두 한마음이 돼 뜻을 모아서 행운이 찾아왔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자칫 병살타의 주인공이 될 뻔했던 9회초 장면을 떠올리며 "제가 참사의 주역이 될 뻔했다"며 "과거 왕조의 주역인 류현진(한화 이글스) 선배님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의 기운이 더 강했다"고 공을 돌렸다.
2023년 WBC 1라운드 탈락의 쓴맛을 함께 겪었던 동료들과의 유대감도 빼놓지 않았다. 이정후는 "박해민(LG 트윈스) 선배, 김혜성(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고우석(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마이너리그) 등 최근 몇 년 동안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던 동료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또 마지막 2이닝을 틀어막은 조병현(SSG 랜더스)을 향해 "솔직히 병현이가 제일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중압감도 정말 컸을 텐데 마지막에 멀티 이닝을 막아줘서 고맙다"며 박수를 보냈다.
한국 대표팀은 이제 8강이 펼쳐지는 미국 마이애미로 향하는 전세기에 오른다. 이정후는 "우리 선수들이 전세기라는 메이저리그 시스템을 누리게 돼서 정말 좋고, 그것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며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 야구에서 더 많은 메이저리거가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17년 만에 밟는 WBC 8강 무대, 한국 야구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