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물가 안정 방침이 식품 업계 전반을 향한 가격 조정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내려가며 시작된 빵과 케이크 가격 인하에 이어 이번에는 라면과 과자 가격이 논의 대상이 됐다.

9일 식품 업계에 따르면 일부 라면과 제과 업체들은 정부 뜻에 따라 실무 단계에서 가격 인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밀가루와 설탕 값이 내려가면서 판매 가격을 조정할 요인이 생겼는지 따져보는 과정이다. 다만 한 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같은 원재료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아직은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라고 설명했다.
업체들의 이번 움직임은 연일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정부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일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주요 라면 업체 4곳의 관계자가 참석한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가 민생 안정의 시작이라며 물가 안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직접적으로 가격 인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민생물가 특별관리 전담 조직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며 간접적인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자 업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가 가격 조정의 계기가 됐다. 공정위는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4개 업체가 201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분당 판매 가격을 담합했다고 보고 있다. 전분당은 옥수수를 갈아 만든 가루와 이를 통해 생산한 물엿 등으로 과자나 음료수의 재료로 쓰인다. 이번 보고서에는 2007년 이후 적용된 적이 없었던 가격 재결정 명령까지 담겼다. 앞서 빵값 인하 역시 공정위 조사가 시작점이었던 만큼 업계는 이번 심의 결과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
다만 라면과 과자 가격이 실제로 내려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길어지면서 중동 지역의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라면 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원가 비중은 10에서 30퍼센트 미만이라며 유가와 환율이 오르면 오히려 원가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제과 업계 관계자도 밀가루 비중은 10퍼센트 이내라며 인건비와 물류비가 원가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토로했다. 중동 시장에 투자해온 업체들은 전쟁이 주변 나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주요 업체 중 한 곳이 가격을 내리면 다른 곳들도 따라가는 도미노 인하 가능성도 있다. 제빵 업계는 지난달 한 업체가 가격을 내린 지 2시간 만에 경쟁사가 가격 인하를 발표하기도 했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요구가 사실상 강제적인 압박으로 느껴져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