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메네이의 아들은 내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다(Khamenei's son is unacceptable to m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각)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저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아들은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며 “내가 후계자 지명 과정에 관여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이란의 최고 권력기관인 전문가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바로 그 인물 모즈타바 하메네이(56)를 제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전문가회의는 8일(현지시각) 임시 회의를 열고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회의는 성명에서 “오늘 임시 회의에서 존경하는 대표들의 결정적인 투표를 바탕으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신성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제3대 지도자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긴박한 전쟁 상황과 적들의 직접적인 위협에도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며 “신중하고 포괄적인 심의 끝에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이란 국영 TV는 모즈타바가 “압도적인 찬성표”로 선출됐다는 성명을 낭독하며 국민들에게 새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테헤란 도심에서는 시민들이 새 최고지도자 선출을 축하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이번 권력 승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한 이후 불과 열흘 만에 이뤄졌다. 이란 헌법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88인 전문가회의가 소집돼 후계 구도를 논의했고, 결국 권력은 하메네이 가문 내부에서 이어지게 됐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이후 최고지도자가 부자(父子) 간에 승계된 것은 처음이다.
올해 56세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공식 정치 직위는 거의 맡지 않았지만 이란 권력 구조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핵심 인물로 거론돼 왔다. 서방 외교가와 정보기관들은 그를 아버지의 핵심 측근이자 막후 실세로 평가해 왔다. 미국 재무부는 2019년 그를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공식 직책 없이도 최고지도자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2005년과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당선을 돕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정보기관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구축해 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선출은 이란 권력 구조에서 혁명수비대와 보수 성직자 진영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려졌다는 점에서 국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란 후계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모든 것을 청산하고 싶다”며 “새 지도자가 10년에 걸쳐 재건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차기 지도자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는 이러한 발언을 사실상 무시한 채 권력 승계를 강행했다. 전문가회의는 전쟁 상황과 외부 압박 속에서도 결정을 미루지 않았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역시 즉각 모즈타바 지지를 선언했다. 이란 체제가 외부 압력 속에서도 내부 권력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전략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군사적 압박과 강력한 경제 제재를 통해 이란 체제에 변화를 유도하려는 접근법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이번 권력 승계로 인해 이란 내부 권력 구조가 예상보다 빠르게 정리되면서 체제 균열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치 상황도 또 다른 변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습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확대에 대한 피로감과 우려가 적지 않은 셈.
중동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 유가 상승이 미국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은 자동차 중심의 이동 구조를 가진 사회인 만큼 휘발유 가격 변화가 정치적 민감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국제 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게 되고 이는 미국 소비자 물가와 정치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인물이 실제로 권력 정점에 오르면서 미국의 대이란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