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기극] ‘집 한 채’ 값의 유혹… 인삼 위조하다 사형까지 당한 사기꾼들
최근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핵심 수출품이라면, 조선 시대에는 ‘인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청나라 황실부터 일본 막부까지 조선 인삼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섰을 정도로 인삼은 국가 최고의 전략 자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가 치솟으면서 인삼을 둘러싼 기상천외한 사기 수법이 기승을 부렸고, 이에 조정은 ‘사형’이라는 초강수 처벌로 대응했습니다.
■ 인삼 한 근에 수억 원… ‘일확천금’의 눈먼 사기꾼들 조선 후기, 무분별한 개간으로 인삼 산지가 급격히 줄어들자 인삼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숙종 때 192냥이었던 최고급 인삼 한 근 가격이 영조 때에 이르러서는 6,400냥으로 폭등했습니다. 이는 현대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인삼 한 근만 제대로 위조해 팔아도 서울의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이익 때문에 사기꾼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양의 서소문 시장은 이른바 ‘짝퉁의 성지로 불렸으며, 이곳에서 가짜 약재나 골동품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팔던 상인들을 ‘안화상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의 수법은 현대의 관점에서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
■ 도라지 깎고 납 조각 박고… 기상천외한 위조 수법 위조범들의 주특기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도라지를 정교하게 깎은 뒤 인삼 향을 입혀 아예 새로 창조하는 ‘조삼(造蔘)’ 수법이었습니다. 둘째는 작은 인삼들을 아교로 교묘하게 이어 붙여 거대한 대물 인삼으로 둔갑시키는 '부삼(附蔘)' 수법이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수법은 무게를 늘리기 위해 인삼 속에 납 조각을 박아 넣는 행위였습니다. 인삼 열 근을 스무 근으로, 백 근을 이백 근으로 부풀렸다는 황당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위조 인삼은 국가 간의 신뢰마저 무너뜨렸습니다. 1764년 통신사 조엄은 일본으로 가져갈 선물용 인삼 속에 불량품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노잣돈을 털어 부족한 예물을 메워야 했던 참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인삼 위조는 화폐 위조와 같다”… 자비 없는 엄벌 조선 조정은 이러한 행위를 국가 경제를 어지럽히고 국제 신용을 망치는 중죄로 규정했습니다. 영조 시대의 법전인 『속대전』과 『전율통보』에 따르면, 인삼 위조는 화폐 위조와 똑같은 죄로 취급되었습니다. 특히 인삼을 몰래 내다 파는 밀매나 밀무역에 대해서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숙종 26년(1700년), 일본인들과 인삼을 밀거래하던 상인 김자원은 결국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먹거리와 국가 전략 자산으로 장난을 치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무시무시한 시절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