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왕과 사는 남자’ 보고 나면 꼭 가봐야 할 '이곳'

2026-03-03 11:41

남양주 진건읍에 자리한 조선왕릉 ‘사릉’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난 뒤 단종의 이야기가 계속 맴돈다면, 스크린 밖 서사까지 따라가 볼 만한 국내 여행지가 있다.

사릉 능침 전경 / 궁능유적본부 제공
사릉 능침 전경 / 궁능유적본부 제공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와 장릉에는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주말이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공간을 되짚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단종의 비극을 조금 다른 결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소는 없을까.

청령포와 장릉을 보고 나면 ‘단종의 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 답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곳이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의 사릉으로,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가 잠든 능이다.

강원도 영월이 단종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이라면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사릉은 그 이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장소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끝에 생을 마친 뒤, 그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던 정순왕후의 삶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남양주 사릉 / 위키트리 정혁진 기자
남양주 사릉 / 위키트리 정혁진 기자

◈ 사릉에서 시작되는 ‘정순왕후’ 이야기

남양주 진건읍에 자리한 사릉은 조선 6대 왕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단종이 폐위되면서 정순왕후도 노산군 부인으로 신분이 강등됐고 궁궐을 떠나야 했다. 남편이 영월에서 생을 마친 뒤에도 그녀는 곁에 있을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복위와 함께 왕비의 지위를 회복했다.

정순왕후는 계유정난 뒤 수양대군의 뜻에 따라 단종과 혼인했다. 그러나 단종을 지지하던 세력이 차례로 숙청되는 과정에서 단종이 왕위를 내주고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함께 서인으로 강등됐다.

단종이 유배길에 오르던 때 두 사람은 한양에서 헤어졌다. 전해지는 말로는 청계천 영도교 일대가 마지막 이별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별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기록에는 정순왕후가 동대문 밖 숭인동 정업원 일대에 초가를 짓고 살았고 끝까지 곁을 지킨 시녀 세 명과 함께 동냥으로 끼니를 잇거나 염색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한경지략』에는 정순왕후를 딱하게 여긴 한양의 부녀자들이 끼니때마다 먹을거리를 챙겨주려 했지만 조정에서 이를 막자, 정순왕후 거처 인근에 부녀자들만 드나드는 채소시장을 열어 채소를 파는 척하며 몰래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순왕후는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사후 반세기 넘는 시간을 더 살며 세조와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의 시대를 모두 지켜봤다. 다만 단종이 대군의 예로 복권된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의 일이었고 두 사람은 끝내 합장되지 못했다.

남양주 사릉 / 위키트리 정혁진 기자
남양주 사릉 / 위키트리 정혁진 기자

◈ 사릉에서 이어진 상징, ‘정령송’ 이야기

남양주 사릉은 정순왕후의 무덤이 있는 능역이다. ‘사릉’은 생각할 사(思) 자를 쓰는 이름으로, 정순왕후가 평생 단종을 잊지 못했다는 뜻으로 지어진 묘호다.

1999년에는 사릉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를 영월 장릉으로 옮겨 심고 ‘정령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월에서 옮겨 심은 나무로 두 사람이 사후에나마 이어지길 바라는 상징적 조치로 현재 영월 장릉을 찾으면 능역에서 이 소나무를 직접 볼 수 있다.

영월 장릉 정령송 / 위키트리 정혁진 기자
영월 장릉 정령송 / 위키트리 정혁진 기자

능역을 천천히 걷다 보면 단종의 능인 영월 장릉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청령포가 유배의 공간이고 장릉이 복위 이후의 명예 회복을 상징한다면 사릉은 그 사이를 견디며 살아낸 시간을 보여주는 장소다. 영화의 여운을 따라 영월을 찾았다면 이제는 서울과 가까운 남양주에서 또 다른 서사를 마주해볼 수 있다.

사릉(思陵, 단종비 정순왕후) / 구글 지도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