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중 심정지로 쓰러져…” 한국 대중음악의 산증인, 갑작스레 세상 떠났다

2026-02-27 15:42

히트곡 뒤의 숨은 손, 편곡가 김용년을 아시나요

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히트곡 다수의 편곡을 맡았던 원로 작곡가 김용년이 별세했다. 향년 82세.

작곡가 고(故) 김용년. / 김용년 유족 제공-연합뉴스
작곡가 고(故) 김용년. / 김용년 유족 제공-연합뉴스

26일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와 유가족에 따르면 김용년은 전날 오후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주최한 저작권 대상 행사에 참석한 뒤 귀가하던 중 자택 근처에서 심정지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유가족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인이 10년 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는 등 심장 질환을 오래 앓아왔다고 밝혔다. 직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당뇨도 앓고 있었다고 전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음악 관련 행사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는 설명이다.

김용년은 생전 작사·작곡·편곡을 포함해 약 3700여 곡을 작업했다. 유가족은 “TV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가 나오면 ‘저 곡은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곤 했다”며 음악을 삶의 중심에 둔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8월 베트남 주둔 미군 쇼 공연을 위해 결성된 6인조 록밴드 롤링식스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약 1년간 베트남에서 활동한 뒤 귀국해 록밴드 비블루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1972년에는 라틴 음악을 선보이던 5인조 그룹 조커스에 건반 연주자로 합류했다.

록밴드 롤링식스 활동 시절. 김용년은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다. /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연합뉴스
록밴드 롤링식스 활동 시절. 김용년은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다. /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연합뉴스

박성서 평론가는 김용년이 조커스 시절 주한미군 방송 AFKN을 밤새 들으며 녹음한 뒤 이를 채보해 밴드 음악으로 편곡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해외 음악을 귀로 듣고 악보로 옮긴 뒤 국내 무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낮에는 오치수 악단에서 반주를 맡고, 밤에는 조커스 멤버로 무대에 오르며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용년은 본격적으로 편곡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동원·박인수의 ‘향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작곡가 김희갑이 만든 다수의 히트곡 편곡을 맡았다. 이 곡들은 당시 가요 차트를 휩쓸며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그는 김수희의 ‘남행열차’, 태진아의 ‘옥경이’,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등 198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곡 편곡에도 참여했다. 곡의 분위기와 악기 배치를 설계하는 편곡 작업을 통해 대중이 기억하는 사운드를 완성한 인물이었다.

김용년은 김남균이라는 예명으로 작곡가 활동도 병행했다. 혜은이의 대표곡 ‘피노키오’를 작곡했고, 박인수·이수용의 ‘사랑의 테마’, 유익종의 ‘추억의 안단테’ 등을 만들었다. 편곡뿐 아니라 작곡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남겼다.

작곡가 김용년. /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연합뉴스
작곡가 김용년. /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연합뉴스

고인과 함께 작업했던 작사가 지명길은 2017년 김용년의 스튜디오 겸 자택에 큰 화재가 발생해 귀중한 자료와 데이터가 사라졌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 상실 증세를 겪었고 이후 당뇨까지 앓는 등 건강 문제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용년의 이름은 무대 위에 직접 서는 가수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히트곡 뒤에서 사운드를 다듬고 방향을 설계한 음악인이었다. 1960년대 밴드 활동에서 출발해 1980년대 가요 전성기를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현장에서 지켜본 인물이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지원 씨와 자녀 김동건, 민지 씨가 있다. 김동건은 영화 ‘애니깽’, 드라마 ‘천사의 유혹’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동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며, 장지는서울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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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