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 외면하고 싶은 풍경이 있다.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쉼 없이 연기를 내뿜으며, 수명을 다한 물건들을 태우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도 한때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굳게 닫혔던 철문 너머로 정적이 흐르던 소각장은 이제 침묵 대신 예술을 품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있는 ‘부천 아트벙커 B39’는 과거의 흔적 위에 현재의 감각을 덧입힌 복합문화공간으로, 산업 시설 특유의 거친 질감과 전시·공연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부천 아트벙커 B39는 1995년 가동을 시작해 2010년 문을 닫은 삼정동 소각장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폐소각장 재생 문화공간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깊이 39미터의 대형 벙커다. 명칭에 붙은 숫자 ‘39’는 이 벙커의 규모에서 비롯됐다. 한때 폐기물이 쌓이던 어둡고 깊은 수직 공간은 현재 미디어아트와 설치 작품이 펼쳐지는 전시장으로 활용되며, 공간 자체가 하나의 전시 장치처럼 작동한다.

관람 동선은 소각장이 작동하던 당시의 흐름을 바탕으로 구성돼 있다. 쓰레기 반입 구역에서 시작해 저장조와 소각로를 지나, 정화된 가스가 배출되던 설비 공간까지 이어진다. 벽면에 남은 콘크리트의 거친 표면, 녹슨 철제 구조물, 옛 중앙제어실의 장치 등은 일부러 지워내기보다 가능한 한 보존해, 현대 예술 작품과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새로 지어진 전시장’이라기보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장소를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이어지는 건물에는 전시장 외에도 카페와 커뮤니티 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층을 오가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일상적인 도시 풍경은 내부의 산업적 공간감과 맞물려 묘한 대비를 만든다. 또한 공간 한편에는 소각장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 전시가, 다른 한편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실험적인 현대미술이 함께 놓이기도 해 ‘기억을 보존하는 기능’과 ‘새로운 해석이 덧붙는 기능’이 동시에 드러난다.
운영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하고, 대관 일정이나 전시 준비 기간에 따라 일부 공간 이용이 제한될 수 있어 방문 전 일정 확인이 권장된다. 별도의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버려졌던 산업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다시 쓰이는 과정은 도시 재생이 단지 외관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장소의 의미를 새로 쓰는 작업임을 보여준다. 부천아트벙커B39는 그 변화의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방문객에게 묵직한 인상과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