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지만,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중심에는 올림픽 은퇴를 선언한 최민정과, 그에게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남긴 심석희가 있다.

최민정은 이번 올림픽 대회에서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추가했다. 개인 통산 올림픽 메달은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로 총 7개다. 진종오, 김수녕, 이승훈(이상 6개)을 넘어 한국 선수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을 세웠다. 기록은 수치로 남았고, 이름은 한국 스포츠사에 새겨졌다.
그는 1500m 은메달 직후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며 이번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21일(현지 시각) 밀라노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경기 시작부터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은 준비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대회는 세대교체의 장면도 분명했다. 김길리는 1500m에서 최민정의 올림픽 3연패를 저지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3000m 계주 금메달, 1000m 동메달을 더해 2관왕에 올랐다. 올림픽 데뷔 무대에서 3개 이상의 메달을 따낸 사례는 2014 소치 대회 심석희 이후 12년 만이다. 김길리는 “언니와 큰 대회에서 함께 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이소연 역시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성실한 선수였다”며 선택을 응원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여자 3000m 계주 결승이었다. 최민정, 김길리, 심석희, 노도희, 이소연이 만들어낸 완벽한 레이스는 2018 평창 이후 8년 만의 정상 탈환으로 이어졌다. 한국 여자 계주는 다시 ‘세계 최강’의 위치를 되찾았다.
과정은 더 주목받았다. 2018 평창 올림픽 당시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멀어졌던 최민정과 심석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관계 회복에 나섰다. 주장을 맡은 최민정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밀라노 현지에서 열린 심석희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훈련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신체가 직접 닿는 배턴 터치와 레이스 전략을 반복 점검했다. 176cm의 장신 심석희가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닌 최민정을 밀어주는 장면은 전술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결과는 금메달이었다.

은퇴를 선언한 최민정을 향해 심석희는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개인전보다 계주를 더 신경 써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주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부담이 크고 불편했을 것”이라며 “힘든 부분이 많았을 텐데 묵묵히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년간 공개적으로 최민정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전한 것은 처음이다.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가 읽힌다. 계주 금메달은 개인의 기량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갈등을 봉합하고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두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과거의 서사를 덮기보다는, 그것을 딛고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무게가 있다.
앞서 2021년 최민정과 심석희 간의 관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심석희가 당시 코치와 나눈 개인 메시지가 외부로 유출되며, 최민정을 향한 비하 발언과 고의 충돌을 암시하는 표현이 포함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내용은 곧바로 파장을 일으켰고, 대표팀 내부 분위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조사 끝에 심석희에게 자격 정지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 징계로 심석희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사건 이후 두 선수는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계주 경기에서 직접 배턴을 주고받는 장면은 철저히 배제됐다. 팀 전술은 유지됐으나, 핵심 구간에서의 직접 터치는 사라졌었다.

체격과 힘이 좋은 심석희가 가벼운 체구와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닌 최민정을 밀어주는 전략은 오랫동안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강점으로 꼽혔다. 신체 조건과 주행 스타일이 상호 보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 균열이 생긴 뒤에는 이 공식이 현장에서 구현되기 어려웠다. 전술적 효율보다 관계 관리가 우선 과제로 여겨졌었다.
최민정의 은퇴 이후 행보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선수로서의 올림픽 여정은 일단락됐지만, 한국 쇼트트랙의 한 시대를 이끈 이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