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역사상 가장 오래 또 가장 집요하게 추적됐던 마약 카르텔 수장이 마침내 쓰러졌다. 그 여파로 멕시코 전역이 불길과 공포 속으로 빠져들었다.
멕시코 군은 22일(현지시각) 할리스코주 타팔파에서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수장 네메시오 루벤 오세게라 세르반테스, 일명 '엘 멘초'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59세였던 엘 멘초는 교전 중 중상을 입고 헬기로 멕시코시티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수십 년에 걸쳐 멕시코와 미국이 전방위로 추적해 온 세계 최대 규모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가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리카르도 트레비야 멕시코 국방부 장관은 23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엘 멘초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하며 작전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당국은 엘 멘초의 연인을 추적해 그의 위치를 특정했고, 군 특수부대·국가방위대·경찰로 구성된 합동 작전팀을 항공기와 전투 헬기와 함께 현장에 투입했다. 작전팀은 중무장한 CJNG 조직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맞서 교전을 벌인 끝에 인근 숲 지역으로 도주한 엘 멘초를 생포했다. 작전 현장에서 CJNG 대원 4명이 사살됐으며, 장갑 차량과 로켓 발사기 등 중화기가 대량 압수됐다. 엘 멘초의 핵심 측근이자 '카르텔 재정 담당자'도 이번 작전에서 사살됐다고 트레비야 장관은 덧붙였다.
멕시코 당국은 미국과의 정보 공유가 이번 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이번 작전에 정보 지원을 제공했음을 확인했고, 크리스토퍼 랜다우 미 국무부 부장관은 엘 멘초를 "가장 잔혹하고 피에 굶주린 마약 두목 중 하나"라고 묘사하며 그의 죽음을 "멕시코, 미국,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세계 전체에 엄청난 성과"라고 평가했다.
CJNG는 조직적인 보복에 나섰다. 주요 간선도로 곳곳에 화염 차량이 세워졌고, 전국 20개 주에 걸쳐 252건의 도로 봉쇄가 보고됐다. 이 과정에서 CJNG는 주민들에게 "더러운 정부 탓에 혼란이 벌어질 것이니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방해가 되는 사람은 누구든 해치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주민들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카르텔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실상의 통행 금지를 선포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할리스코주 주도 과달라하라는 순식간에 유령도시로 변했다. 인기 관광지인 항구 도시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선 해안가 호텔 너머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오마르 가르시아 하르푸치 안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조직원들이 도로 봉쇄, 차량과 건물 방화, 군사 시설 공격 등을 자행했다"며 "당국을 향한 비겁한 공격 27건이 할리스코주에서만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방위대원 25명, 주 경찰관 1명, 교도관 1명, 임신한 것으로 전해진 민간인 여성 1명이 사망했다. 파블로 레무스 나바로 할리스코 주지사는 주 전역에 '레드코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중교통 운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당국이 공식 확인한 전체 사망자 수는 60명에 가깝다. 카르텔 조직원 사망자 34명을 포함한 수치다. 과나후아토주에서는 23개 자치구에서 70건 이상의 습격 사건이 보고됐으며, 방화 공격만 60건에 달했다. 복지 금융기관인 비에네스타르 은행 지점 18곳과 편의점 체인 옥소 매장 69곳도 피해를 입었다.
혼란은 국제공항으로도 번졌다. 델타항공, 알래스카항공, 아메리칸항공, 에어캐나다 등 주요 국제 항공사들이 푸에르토 바야르타와 과달라하라 노선 항공편을 대거 취소했다. 주재 미 대사관은 할리스코, 타마울리파스, 미초아칸, 게레로, 누에보레온 등 여러 주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현장 대피령을 내리고 이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미 국무부 24시간 위기 상담 전화에는 항공편 취소와 관련한 문의 전화가 수백 건 쏟아졌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치안 안정화를 통한 평화와 안보 보장"이라며 병력 2500여 명을 주요 거점 지역에 추가 투입했다고 밝혔다. 국가방위대원까지 포함하면 증강 배치된 보안 인력은 1만 명에 이른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된 항공기 화염 조작 사진 등 가짜 뉴스를 지적하면서 "멕시코 대부분 지역에서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엘 멘초는 멕시코를 거점으로 최근 수년 사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초국적 범죄 조직을 이끈 인물이다. 2009년 할리스코주를 기반으로 CJNG를 창설한 그는 조직을 미국 전역 50개 주에 네트워크를 갖춘 거대 범죄 제국으로 키워냈다. 엘 멘초는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밀수를 총지휘하고, 멕시코 정부 고위 관료를 겨냥한 대담한 공격들을 지시했다. 2015년에는 할리스코주에서 군 헬기를 격추했으며, 2020년에는 멕시코시티 한복판에서 당시 수도 경찰청장이었던 가르시아 하르푸치 현 안보부 장관을 수류탄과 고성능 소총으로 암살하려 한 바 있다. 미 마약단속국(DEA)은 그의 체포 정보 제공에 1,500만 달러(약 221억 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엘 멘초 사후 조직 내 권력 공백을 어떤 인물이 채울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의 의붓아들 후안 카를로스 곤살레스 발렌시아, 일명 '엘 펠론'이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테러대응센터에 의해 실질적인 2인자로 지목됐다. 다만 엘 멘초의 친아들이 미국에서 수감 중인 상황에서 승계 구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위기그룹(ICG) 멕시코 분석가 데이비드 모라는 이번 생포와 보복 폭력 사태가 셰인바움 정부의 카르텔 대응 전략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는 월드컵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터져 국제 사회의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개최지 중 하나다.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6월 18일 멕시코 대 한국 경기를 포함한 조별 리그 4경기가 예정돼 있다. 더 시급한 것은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같은 경기장에서 열리는 월드컵 플레이오프 토너먼트다. 뉴칼레도니아, 자메이카, 콩고민주공화국이 본선 티켓을 놓고 격돌하는 이 대회까지 불과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FIFA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멕시코 정부는 월드컵 개최 도시인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지역 보안 태세를 지방 정부와 협력해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