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 산자락에서 번진 불길은 순식간에 마을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불길의 한가운데서 발견된 이는 도망치는 방화범이 아니었다. 구덩이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80대 노인이었다.
충북 단양경찰서는 23일 심야에 군유림에서 불을 피워 산불을 낸 혐의(산림재난방지법 위반)로 남성 A(82) 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 씨는 이날 새벽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 군유림에서 나뭇가지와 낙엽 등을 모아 불을 붙인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장 상황만 보면 방화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A 씨의 손에는 라이터가 있었고, 바지 일부는 그을려 있었다.
그러나 조사에서 드러난 속사정은 달랐다. 치매 증세가 있는 A 씨는 단양읍에 나갔다가 귀가하던 중 버스를 잘못 내렸다. 집을 찾겠다며 어두운 산길을 무작정 걷다 농로 옆 도랑에 빠졌고, 젖은 몸으로 한겨울 한밤중 추위를 견디다 못해 불을 피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불씨의 시작이 생존 본능이었던 셈이다.
소방관들이 A 씨를 발견했을 때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았다. 그저 구덩이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만 긴급피난적 성격이 있다고 해서 형사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책임 여부는 수사와 법적 판단을 거쳐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산불은 약 6시간 만에 큰 불길이 잡혔고, 발생 9시간 40분 만인 오전 11시 40분께 완전히 꺼졌다.
이 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인근 주민 50여 명이 경로당으로 대피하는 등 한밤 소동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