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 도착해 처음 마주하는 바람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금방이라도 바다를 박차고 솟아오를 듯한 거대한 형상과 마주하게 된다. 제주시 용담2동 해안에 자리한 용두암은 제주가 품은 오랜 시간의 퇴적과 간절한 염원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약 50만 년 전에서 60만 년 전 사이에 분출된 용암류로 형성된 이곳은 밖으로 드러난 암석 전체가 붉은색의 현무암질로 이루어져 독특한 지질학적 경관을 연출한다. 용암이 위로 솟구치며 굳어진 형태는 화산섬 제주의 탄생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지질학적 연구 가치 또한 높게 평가받는다. 거센 바람과 파도가 오랜 시간 다듬어낸 표면은 제주 해안 특유의 거칠고도 단단한 인상을 남긴다.

‘용두암’이라는 이름은 파도와 바람이 씻어낸 암석의 모양이 용의 머리를 빼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서린 전설은 여행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던 용이 신령이 쏜 화살을 맞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부터, 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승천을 꿈꿨으나 끝내 좌절한 이무기의 한 맺힌 절규까지, 서사는 다양하면서도 깊다. 바다 위로 드러난 10m 높이의 머리 부분과 바닷속에 몸을 숨긴 약 30m 길이의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설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억울한 울음을 삼키듯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응시하는 듯한 바위의 모습은, 해가 기울고 노을이 번질 때 한층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용두암 인근의 용연은 또 다른 정취를 선사한다. 취병담 또는 용추라 불리는 이 깊은 연못은 과거 유배된 선비들과 지방 관리들이 달밤에 뱃놀이를 즐기며 풍류를 나누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바다의 거친 숨결이 닿는 해안과 달리, 용연은 물길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결을 품고 있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용두암의 옆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감상하고 싶다면 서쪽으로 조금 걸어 인근 전망대를 찾는 것이 좋다.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날이면 암석 주위로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바위의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며, 용이 포효하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이 풍경을 마주하면 대자연이 빚어낸 형상이 왜 ‘용의 머리’로 불려 왔는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듯한 형상은 잔잔한 날보다 거친 파도와 어우러질 때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용두암에서 도두항까지 이어지는 용담-도두 해안도로는 제주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이자 데이트 명소로 손꼽힌다. 바닷길을 따라 늘어선 카페거리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 뒤, 이호테우해변과 애월읍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이어가기에도 좋은 동선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공식 관광 정보에 따르면 용두암은 연중 24시간 상시 개방되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내외면 도착할 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제주 여행의 시작점에서, 바람과 파도와 전설이 겹쳐지는 풍경을 가장 먼저 마주하고 싶다면 용두암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