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끝나고 나면 냉장고 안은 비슷한 풍경으로 채워진다. 차례상에 올렸던 시금치나물과 고사리, 도라지가 반찬통마다 나뉘어 담겨 자리를 차지한다. 한두 번 더 데워 먹고 나면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대로 두기에는 애매한 이 나물들은 김 한 장과 밥 한 공기만 더해지면 전혀 다른 음식으로 정리된다. 나물 김밥이다.
나물 김밥의 강점은 준비 과정이 거의 필요 없다는 데 있다. 명절 상에 올랐던 나물은 이미 참기름과 소금, 마늘 등으로 간이 돼 있다. 별도의 밑간이나 추가 조리 없이 그대로 속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시금치는 부드럽게 밥을 감싸고, 고사리는 쫄깃한 식감을 더한다. 도라지는 은은한 쌉싸름함으로 전체 맛의 균형을 잡는다. 세 가지를 함께 넣어도 되고, 남은 나물의 종류에 따라 한두 가지만 골라 넣어도 조합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밥은 갓 지은 따뜻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참기름 한 방울과 소금 한 꼬집을 넣어 가볍게 버무리면 기본 준비가 끝난다. 나물 자체에 이미 간이 배어 있어 밥의 간은 약하게 맞추는 편이 전체 균형을 해치지 않는다. 구운 김을 사용하면 고소한 풍미가 또렷해진다. 김 
속재료를 올리기 전에는 나물의 수분을 정리해야 한다. 보관 과정에서 생긴 물기를 그대로 두면 김이 눅눅해지고 김밥이 쉽게 풀어진다. 나물을 손으로 가볍게 쥐어 여분의 수분을 제거한 뒤 길게 올려야 단단하게 말린다. 여러 종류를 함께 넣으면 단면의 색감과 식감이 동시에 살아난다. 계란지단이나 단무지 등을 추가해 구성을 넓힐 수도 있지만, 나물만으로도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남은 나물을 잘게 다져 밥과 섞어 주먹밥으로 만드는 방식도 있다. 동그랗게 빚어 김가루를 묻히거나 참깨를 더하면 향이 강조된다. 김밥보다 공정이 단순해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이미 간이 배어 있는 나물이 밥과 어우러지며 자연스러운 맛을 형성한다.
나물 김밥은 남은 반찬을 처리하는 임시방편이 아니다. 손질과 간이 끝난 재료를 다시 배열해 전혀 다른 형태의 식사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냉장고 속 나물이 김과 밥을 만나면서, 명절 상의 흔적은 또 하나의 한 끼로 정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