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미식 기록의 가치: 허균의 '도문대작'과 선비들의 식문화
조선시대는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하던 사회였으나, 그 이면에는 음식의 맛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미식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특히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은 자신의 미식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각지의 음식을 정리한 기록을 남겨 당시 식문화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1. 조선 최초의 미식 가이드: 허균의 『도문대작』
허균은 1618년 처형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제공된 초라한 밥상에 대해 불만을 표했을 정도로 평생 음식의 맛을 중요하게 여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인사권을 쥔 관리에게 편지를 보내 생선과 게가 풍부하게 잡히는 지역으로 발령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그의 미식가적 면모가 가장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기록은 유배 시절 작성한 『도문대작』입니다. 유배지에서 거친 음식으로 연명하던 허균은 과거에 맛보았던 전국의 산해진미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책의 제목인 '도문대작'은 '도살장 문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씹는다'는 뜻으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 현재의 처지에서 과거의 맛을 추억한다는 자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저술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조선 팔도의 특산물과 음식 정보를 담은 최초의 미식 가이드북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닙니다.
2. '시(詩)'로 남긴 리뷰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감흥을 기록하는 행위는 일종의 풍류이자 문학적 활동이었습니다. 문신 서거정은 특정 음식을 맛본 뒤 그 맛을 찬양하는 시를 남겼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해당 음식이나 식당의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유명한 선비나 문인이 식당의 벽에 시를 남기는 행위는 오늘날의 맛집 인증이나 서명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문인들에 의해 검증된 식당들은 입소문을 타고 명성을 얻기도 했으며, 이는 조선시대에도 이미 맛에 대한 비평과 공유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3. 상업적 식당의 발달과 '군칠이집'
조선시대 대표적인 맛집 사례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개장국(보신탕의 옛 이름)을 전문으로 하던 '군칠이집'입니다. 이 식당은 당시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분점을 낼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군칠이집의 명성은 당대 민중의 삶을 반영한 문학 작품인 『춘향전』에도 언급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미식 문화의 바탕이 되는 허균의 기록과 선비들의 시문 속에 남아있는 이러한 흔적들은 한국 식문화의 깊이와 역사를 증명하는 소중한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