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이벤트 보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비트코인 62만 개를 잘못 지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수백 명의 투자자 계좌에는 짧은 시간 동안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대 자산이 표시됐고, 일부는 이를 현금화해 한때 수십억 원을 손에 쥐기도 했다.
9일 당국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 6일 오후 7시 '랜덤박스' 이벤트 당첨자 249명에게 총 62만원을 지급하려다 '원' 단위를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해 62만 개의 비트코인을 지급했다. 당첨금은 1인당 2000원에서 5만원 상당이었지만, 시스템 오류로 비트코인 수량 그대로 입금된 것이다.
JTBC 보도에 따르면 40대 A씨는 당일 오후 7시 22분쯤 이벤트 혜택 지급 안내 문자를 받았다. 처음에는 2000원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좌를 다시 확인하니 비트코인 2000개가 찍혀 있었고 원화로는 약 1900억 원이 표시돼 있었다. A씨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며 가족과 상의한 끝에 실제 거래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최대 거래량인 50개를 매도했다. 거래는 바로 체결됐고 계좌에는 약 46억 원의 현금이 생겼다. 하지만 출금을 시도하자 출금 대기 상태가 표시됐고, 곧바로 계좌는 정지됐다. 이후 빗썸 고객센터를 통해 비트코인 오지급 사실을 안내받았다.
같은 시각 다른 이용자 B씨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B씨는 자신에게만 잘못 들어온 건가 싶어 지인들에게 비트코인이 2000개 있다고 장난처럼 얘기했으며, 정식 안내는 없었고 다음 날이 돼서야 언론 보도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고 발생 35분 뒤부터 오지급 계좌 거래와 출금을 차단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일부 당첨자가 비트코인 1788개를 발 빠르게 처분한 뒤였다. 빗썸은 매도된 비트코인 중 대부분을 원화나 다른 코인 형태로 회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난 7일 새벽 4시 30분 기준 비트코인 125개 상당은 되찾지 못했다. 현재 시세 기준 약 130억 원 규모다. 여기에는 당첨자 수십 명이 본인 은행 계좌로 출금한 30억 원가량의 원화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빗썸 내에서 비트코인을 판 돈으로 알트코인 등을 다시 구매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빗썸은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의 99.7%를 회수했으며, 나머지 0.3%는 회사 보유 자산을 이용해 수량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빗썸 관계자는 9일 비트코인을 받아 즉시 처분한 고객들과 일대일로 접촉해 반환을 설득하고 방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와 관련해 단순 보상을 넘어 피해자들을 전담하기 위한 전담반도 설치했다.
비트코인 오지급은 일종의 착오 송금과 비슷한 까닭에 빗썸이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서면 회수 가능할 것이라는 말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랜덤박스 이벤트 때 당첨금을 1인당 2000원에서 5만원으로 명시한 만큼 거액의 비트코인을 받은 당첨자 본인은 이를 부당 이득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회사 측이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 등에서 승소할 경우 고객은 비트코인을 판 돈을 토해내야 할 뿐 아니라 회사 측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편취한 고객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유사 사례로 대법원은 지난 2021년 12월 잘못 송금된 비트코인 14억 원어치를 본인의 다른 계정으로 이체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가상자산이 법률상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다며 형법 적용 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판례 변경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당시 법원은 가상자산을 형법상 재물로 보지 않았다며 이후의 사회적 인식 변화나 법·제도 정비 수준 등을 고려할 때 달리 판단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일 빗썸 사고에서 드러난 구조적 취약점 해소 등 가상자산 시장 이용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의 효과적 이행을 준비하고, 주요 고위험 분야에 대한 기획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