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방안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던진 이 한 문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을 흔들었다. 현행 만 18세인 투표 연령을 만 16세, 즉 고1 나이까지 2년 낮추자는 제안이었다. 투표 연령 하향은 그동안 진보 진영의 대표적 의제로 인식돼왔다는 점에서 보수 정당 대표의 선제적 제안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현재 투표 연령은 만 18세다. 2019년 선거법 개정으로 만 19세에서 한 차례 낮아졌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교실에 이념이나 정치가 들어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투표 연령 하향은 보수 진영이 경계하던 사안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국민의힘이 먼저 ‘고1 나이까지 연령을 낮추자’고 나선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장 대표는 연설에서 제안의 근거로 “16세 이상이면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고, 근로에 따른 세금도 납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다른 지점에 닿는다. 청년층의, 보수화 흐름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할 가능성이 커진 세대가 등장한 만큼 투표 연령을 낮춰도 정치적으로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장 대표가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 수치는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지난 2~4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전국지표조사에서 18~29세의 이재명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44%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았다. 전체 평균인 63%보다 19%포인트(p) 낮은 수치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18~29세는 더불어민주당 22%, 국민의힘 21%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민주당 지지율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았고,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은 가장 높았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데이터스프링코리아에 의뢰해 실시한 10대·20대 대상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다. “선거에서 개표 부정이 발생하기 쉽다”는 질문에 10대 남성 48.8%, 20대 남성 42.9%, 10대 여성 39.0%, 20대 여성 35.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5일 YTN라디오 ‘김영수의 더인터뷰’에서 “이들이 일종의 밈처럼 정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며 “이들이 유입되면 선거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 제안은 곧바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부터 비판이 나왔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모택동 시절 홍위병의 핵심이 16~18세 소년들이었다”며 “부정선거 음모론과 반중 선동으로 한국판 극우 홍위병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박선영 전 의원은 SNS에서 “전 세계에서 16세부터 투표권을 주는 나라는 극히 소수”라며 “여당은 베네수엘라를 말하더니 이제 야당까지 쿠바나 니카라과 같은 중남미를 닮아가느냐”고 지적했다.
여당 반응은 더욱 냉담하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학생들의 정치·헌법 교육에는 반대하면서 선거 연령만 낮추겠다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장 대표 연설 도중 이언주 최고위원이 “16세요?”라고 반문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선거 연령 하향이 본래 진보 정당의 의제였던 만큼, 향후 공개 토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에서 언급한 전국지표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한국일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