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암호화폐)을 보면 남한-북한의 적나라한 현실이 보인다는데...

2026-02-05 14:30

코인으로 한국 돈 벌고 북한은 무기 산다
“한반도의 분단, 가상자산 시장서도 재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서울에선 암호화폐(가상자산)가 일상의 소음처럼 존재한다. 거래소 호가창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젊은 직장인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코인이 부와 기회의 상징처럼 회자된다. 반면 평양에서는 가상자산이 철저히 침묵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국제 안보와 금융 질서까지 뒤흔들고 있다.

미국 가상자산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가 4일(현지시각) 기획 기사에서 “남북한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상자산 국가 가운데 하나지만 그 이유는 정반대”라며 “한국은 개인 투자자와 정치, 문화가 시장을 움직이고, 북한은 사이버 범죄를 통해 가상자산을 체제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 투자자가 시장을 움직이는 한국

한국에서 가상자산은 투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비트럼 재단의 한국 총괄인 존 박은 한국 가상자산 산업의 뿌리를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되면서 정보 습득 속도가 빨라졌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문화가 형성됐으며, 가상자산이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편입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강한 부(富) 집착도 영향을 미쳤다. 장시간 노동, 정형화된 커리어 경로, 제한된 소득 상승 구조 속에서 가상자산은 ‘쥐덫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처럼 인식됐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보다 130시간 이상 많다.

이 같은 흐름은 정치로도 번졌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메타버스 육성, ICO(가상자산 공개) 금지 완화, 포괄적 가상자산 법제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MZ세대 표심을 공략했다. 비록 계엄령 논란으로 임기가 단축되며 관련 입법은 진전을 보지 못했지만,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도 가상자산은 핵심 공약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며 누가 승리하든 친가상자산 기조의 정부가 들어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테라 사태 이후에도 꺼지지 않은 열기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위상은 거래량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원화 기준 거래량은 시기별로 달러 거래량과 맞먹거나 이를 웃돌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업체 카이코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원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법정화폐였다.

이 흐름의 분기점은 테라·루나 사태였다. 테라는 한국 국적의 권도형이 설립한 테라폼랩스의 프로젝트다. 한때 ‘한국이 만든 세계적 가상자산’이라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2022년 테라와 루나가 붕괴하면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연쇄 파산이 벌어졌다. 한국인들은 이를 ‘국가적 망신’으로 받아들였다. 권도형은 최근 미국에서 사기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2024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시행했고, 보다 포괄적인 규제 체계를 논의 중이다. 조율 속도는 더디지만, 규제 명확성은 오히려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벤처캐피털 a16z는 한국을 “세계 두 번째 규모의 가상자산 시장”으로 평가하며 아시아·태평양 진출 거점을 서울에 열었다.

솔라나, 레이어제로, 앱토스, 아비트럼 등 주요 블록체인 생태계도 한국 전담 조직과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대표 가상자산 투자사 해시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자체 블록체인을 출시하며, 은행과 금융지주도 관련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북한, 체제 유지 인프라로 가상자산 활용

북한의 가상자산 활용 방식은 정반대다. 코인텔레그래프는 “북한에서 가상자산은 투기나 혁신이 아니라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금융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유엔은 북한의 2023년 국내총생산(GDP)을 약 150억~170억 달러로 추정했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에만 20억20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의 가상자산 탈취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북한 GDP의 약 13.5%에 해당하는 규모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북한이 지금까지 총 67억5000만 달러(약 9조 원)에 달하는 가상자산을 훔쳤다고 보고 있다. 2025년에는 바이비트(Bybit) 해킹 사건으로 연간 탈취액 기록을 다시 세웠고, 이 가운데 14억 달러 규모의 공격은 사상 최대급 사건으로 지목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는 북한의 가상자산 해킹 자금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고 명시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2025년 6월 보고서에서 북한을 가상자산 규제 강화를 서두르는 핵심 배경으로 지목하며, 각국에 가상자산을 ‘규제된 금융 인프라’로 취급하라고 권고했다.

“미국 다음으로 암호통신 강한 나라가 북한”

블록체인 리서치 기업 포필러스의 전략총괄 강희창은 “암호통신 능력만 놓고 보면 미국 다음이 북한”이라며 “도청과 추적을 피하는 것은 체제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단순 해킹뿐 아니라, 가짜 이력으로 글로벌 IT·가상자산 기업에 취업해 급여를 코인으로 받는 방식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활동은 국제 규제 논의를 촉진하는 역설적 효과도 낳고 있다. 북한은 규제의 틈을 파고들지만, 동시에 그 존재 자체가 가상자산 제도화를 앞당기고 있다는 평가다.

'김치 프리미엄'과 또 다른 고립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역시 독특한 형태의 고립을 경험해 왔다. 자금세탁방지 규제로 인해 가상자산 거래는 국내 계좌와 강하게 묶여 있고, 거래소는 특정 은행과 독점적 제휴를 맺어야 한다. 이로 인해 외국 자본과 법인 참여가 제한됐고, 가격이 글로벌 평균보다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반복됐다.

그러나 최근 1년 사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기관과 법인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조정되면서, 글로벌 자본의 유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테더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도 한국 시장을 주요 전략 거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코인텔레그래프는 “한반도의 분단은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며 “한국은 개인 투자자와 정치가 시장을 키우고, 북한은 사이버 범죄로 체제를 유지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활동은 가상자산 산업의 위험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규제와 제도화를 앞당기는 촉매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