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2025년 연간 영업손실 1조 7224억 원을 기록하며 전기차 시장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으나 4분기 들어 에너지저장장치(ESS) 부문의 역대 최대 매출 달성과 미국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수혜 확대에 힘입어 적자 폭을 전 분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회사는 지난 2일 공시를 통해 2025년 4분기 매출 3조 8587억 원, 영업손실 2992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8% 늘고 전 분기 대비로는 26.4%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주요국 친환경 정책 변화라는 악재 속에서도 ESS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에 집중해 온 삼성SDI는 올해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북미 현지 생산 체제 가동을 발판 삼아 2026년을 흑자 전환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실적 개선의 일등 공신은 단연 배터리 부문이었다. 4분기 배터리 부문 매출은 3조 622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28.4% 증가했다. 영업손실은 3385억 원으로 집계됐으나 내용 면에서는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됐다. ESS용 배터리가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갈아치우며 실적 방어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배터리 생산 기업에 제공하는 AMPC 수혜 금액이 늘어났고 전기차용 배터리 물량 감소에 따른 고객사의 보상금이 더해지며 수익성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전자재료 부문은 매출 2367억 원, 영업이익 393억 원을 기록하며 전 분기와 유사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지난해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친환경 정책이 급변했고 전략 고객사들의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들며 고정비 부담이 가중됐다. 소형 배터리 수요 회복마저 지연되는 삼중고를 겪었다. 삼성SDI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돌파구로 삼았다. 중국 기업들이 장악한 각형 배터리 시장에서 유일한 비(非)중국계 제조사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원계(NCA) 기반의 삼성 배터리 박스(SBB) 1.7 모델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리튬인산철(LFP) 기반 SBB 2.0 모델을 연이어 선보이며 제품 라인업을 촘촘하게 짰다.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행보도 멈추지 않았다. BMW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실증을 위한 협약을 맺었고 현대차·기아와는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에 착수하며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 선점에 나섰다.
기술력은 수주 성과로 이어졌다. 주요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규격인 '46파이(지름 46mm)' 제품 수주를 확정 지으며 폼팩터(제품 형태) 경쟁력을 입증했다. ESS 분야에서도 대규모 LFP 각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전력 시장인 1차 중앙 계약시장 물량을 대거 확보했다. 전문가용 전동공구 시장을 겨냥해 전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탭(Tab)을 없애 출력을 높인 '탭리스' 원통형 배터리를 출시하며 공급망을 넓혔다.

삼성SDI는 올해 시장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성장률은 약 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북미와 유럽의 환경 규제 완화 기조와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이 맞물린 탓이다. 반면 ESS와 소형 배터리 시장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나며 비상 전원 공급장치(UPS)와 배터리 백업 유닛(BBU)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로봇과 전문가용 전동공구 시장 역시 회복세가 뚜렷하다.
회사는 '선택과 집중'을 2026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성장세가 뚜렷한 ESS 부문에서는 생산 라인을 100% 가동하고 미국 현지에서 SBB 2.0 양산을 시작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 미국 현지 생산은 물류비 절감과 보조금 혜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핵심 카드다. 전기차 배터리 부문은 신규 고객 확보와 함께 보급형 제품인 LFP와 미드니켈 배터리 수주를 늘려 시장 지배력을 회복한다는 구상이다. 하이브리드 차량 인기에 발맞춰 탭리스 초고출력 원통형 배터리의 신규 프로젝트 수주도 추진한다. 전자재료 부문은 AI 서버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패키징 소재 등 고부가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낸다.
삼성SDI 관계자는 경영 효율화와 시장 대응 속도 향상을 강조하며 올해를 실적 반등의 기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단순한 외형 확장보다는 철저한 수익성 중심의 내실 다지기를 통해 다가오는 2026년을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완성하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