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은 암호화폐 생태계의 적” 10년 전 비밀 이메일 공개

2026-02-03 11:35

비트코인 진영의 리플 견제, 엡스타인 파일 공개되며 드러나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비트코인 초기 핵심 인사가 리플(XRP)과 스텔라루멘(XLM)을 가상자산(암호화폐·코인) 시장의 ‘적’으로 규정하며 투자자들을 압박한 정황이 담긴 10년 전 이메일이 뒤늦게 공개됐다. 해당 이메일은 최근 미국 정부가 과거 성범죄 사건 관련 기록을 대거 공개하는 과정에서 함께 드러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매체 크립토슬레이트는 2일(현지시각) 2014년 작성된 블록스트림(Blockstream) 내부 인사의 이메일을 인용해 비트코인 진영이 리플을 조직적으로 경계하던 초기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미국 법무부가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 투명화 법’에 따라 일반에 공개한 수사 기록의 일부다. 엡스타인 파일은 금융가와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했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이메일, 문서, 사진 등을 포함한 방대한 기록이다. 과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됐지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다. 이번 공개 과정에서 엡스타인과 주고받은 다양한 이메일이 포함되면서 가상자산 업계 인사들의 과거 발언도 함께 드러났다.

문제가 된 이메일은 2014년 7월 31일 작성됐다. 당시 비트코인 기술 기업 블록스트림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오스틴 힐이 주요 투자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수신자 명단에 엡스타인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힐은 이 이메일에서 “리플과 제드 맥케일럽의 스텔라는 가상자산 생태계에 해롭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 프로젝트로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비트코인의 가치와 서사를 훼손하는 요소로 규정했다.

당시 비트코인 진영에서 말하는 ‘생태계’는 지금처럼 다양한 가상자산이 공존하는 개념과는 달랐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단일한 철학과 기술 노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했고, 결제 중심의 리플이나 스텔라 같은 프로젝트는 그 질서를 흐리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는 분석이다.

리플 커뮤니티는 이 이메일을 두고 투자자들에게 사실상 “리플을 지지하면 비트코인 진영과 등을 지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거나, 비트코인 중심 진영을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읽힌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슈워츠 리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당시 일부 비트코인 인사들은 리플이나 스텔라루멘을 지지하는 이들을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했다”며 “이런 배타적인 태도는 산업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해당 이메일이 엡스타인과 리플, XRP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당시의 경고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플은 현재 글로벌 금융권에서 활용되는 제도권 가상자산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리플은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장기 소송을 사실상 마무리하며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했고, 이후 수탁·결제·금융 인프라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스위스의 메타코(Metaco) 인수를 비롯해 글로벌 금융 라이선스를 확보하며 기관 중심 플랫폼으로 변모했다는 평가다.

같은 해 말 프랭클린 템플턴 등 대형 자산운용사가 XRP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면서 XRP는 투기성 자산이 아닌 제도권 투자 자산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장에선 비트코인과 리플을 더 이상 ‘하나만 살아남는 경쟁자’로 보지 않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리플은 결제와 금융 인프라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공존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과거의 진영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 전체의 신뢰와 성장”이라며 “가상자산 시장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공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