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는 당시로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전기차 전환과 반도체 공급난, 글로벌 경쟁 심화라는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적자를 이어오던 로봇 기업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약 11억 달러로 평가하고 지분 80%를 인수했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조6000억 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약 2500억 원을 사재로 출연했다.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방향에 무게를 둔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인수 직후 시장의 시선은 따듯하진 않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뚜렷한 매출 구조를 갖추지 못했고 손실은 오히려 확대되는 흐름이었다. 무엇보다 “로봇은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후 몇 년 사이 환경은 달라졌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이른바 ‘피지컬 AI’가 제조업과 물류, 산업 현장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면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축적해 온 기술 자산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중심으로 한 기술 진전은 단순한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적용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흐름을 분명하게 드러낸 장면이 CES 2026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이 자리에서 차세대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로보틱스와 AI를 결합한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보행 안정성과 작업 수행 능력, 산업 현장 투입을 전제로 한 설계가 공개되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도 달라졌다. 기술 시연을 넘어 사업 모델의 윤곽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 같은 변화는 현대차의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졌다. 현대차는 현재 시가총액 100조 원을 넘어서며 GM과 BYD를 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시총 순위야 조정을 받겠지만 시장에서는 “현대차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판매 실적뿐 아니라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함께 반영하는 시각이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술 성숙도와 사업 확장 가능성을 전제로 상장 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최소 3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는 시각도 나온다. 인수 당시 평가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단기간 실적 변화라기보다 산업 환경 변화와 기술 위상의 이동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장이 현실화할 경우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단순한 로봇 기업을 넘어 현대차그룹 전체 전략을 설명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는다. 보행 제어와 센서 인식, 균형 유지 기술은 이미 자율주행과 스마트 팩토리, 물류 자동화 전략과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로봇이 별도의 신사업이 아니라 그룹 기술 구조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은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회사’라는 정체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려는 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동과 작업, 자동화를 함께 다루는 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다. 다만 정의선 회장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는 그 전환 과정에서 방향을 선도적으로 정한 역사적 선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의 이동 경로를 먼저 읽을 줄 아는 정 회장의 선구안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